래디컬 페미니스트의 과대 포장된 난민 반대

정한울·이동한 2021. 1. 20.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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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반(反)난민 정서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친페미니즘 집단이 난민에 대해 훨씬 관용적이다. 우파 권위주의 성향과 난민 수용에 대한 태도 사이에도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시사IN 이명익2018년 6월18일 예멘 난민들이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2020년 12월28일 법무부는 난민 재신청 절차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난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난민 재신청 절차가 체류 연장이나 취업 목적으로 남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에 난민 관련 인권단체나 정의당은 사실상 난민인정 심사제도 자체를 폐기하는 효과를 내고 대부분의 난민은 추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중단을 요구했다. 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으로 촉발된 논란이 또다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강경한 입법 예고안에는 제주 예멘 난민 논란에서 나타난 폭발적인 수용 반대 여론이 깔려 있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난민 논란에서는 ‘도를 넘는 혐오’나 ‘편견’이 합리적 토론과 설득에 기초한 정상적인 논의를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 지부가 기구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여 2020년 11월 한국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예멘 난민 이후 한국인의 난민 인식조사’ 결과는 차분한 공적 토론을 위한 기초 지식을 제공한다.

우선, 난민 문제에 관한 정보와 이해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난민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2018년에 비해 늘어났다. 2018년 조사에서 난민 수용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24%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33%로 높아졌다. 예멘 난민이 ‘전쟁 난민’이라는 사실을 아는 응답자도 40%(2018년)에서 50% (2020년)로 증가했다. 난민 문제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는 응답도 26%에서 37%로 올라갔다.

그러나 여전히 난민에 반대하는 여론이 53%로 우세하다. 반대의 핵심 이유는 크게 ①‘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64% 동의) ②(성)범죄나 폭력 같은 ‘사회적 불안’에 대한 우려(57%가 동의)로 집중된다. ③종교적·문화적 갈등 우려(46%) ④정부 불신(46%)도 부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반면 찬성 의견은 ①난민의 인권 보호(74%) ②국제적 책임(56%) ③난민들의 심각한 현실(50%)을 꼽았다(〈그림 1〉 참조).

남성보다 여성, 나이 든 세대보다는 젊은 세대, 경제적 불안에 노출된 집단일수록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더 크게 우려했다. 여성의 경우 경제적 부담 및 범죄를 걱정했다. 5060 세대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담을 더 걱정한다.

그동안 외형적으론 페미니즘이 반(反)난민 정서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주 예멘 난민 및 국내 성소수자에 대한 공개적 반대와 극한 혐오가 ‘래디컬 페미니즘(근본주의 페미니즘)’ 그룹을 중심으로 표출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난민, 이주민, 트랜스젠더 등을 ‘생물학적 여성’의 경계 밖 집단으로 배제하면서 난민 혐오와 여론을 이끄는 모양새가 펼쳐진 것이다. 이에 대해 “경계 없는 페미니즘” “확장된 페미니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비판이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도 난민 등 외부 집단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와 우파 포퓰리즘(우파 권위주의에 기반하여 외부 집단을 배제)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증해왔다. 우파 권위주의는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에 대한 순종, 외부 집단에 대한 공격성, 전통적 가치에 순응하는 인습주의 등으로 구성된다.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지도자에 대한 순종, 집단 내부에 대한 강한 정체성, 외부 집단에 대한 반감이 강해 포퓰리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질문 1. 페미니스트는 난민에 적대적인가?

페미니스트 성향을 측정하기 위해 2019년 〈시사IN〉과 한국리서치가 ‘20대 남자’ 조사에서 사용했던 6개의 페미니즘 지표를 이용하였다. 안티페미니즘 성향(-2)~친(親)페미니즘 성향(+2)으로 코딩하여 합산하면 –12~+12의 범위의 지수로 환산된다. 전체 응답자의 25%가 친페미니즘(+4~+12), 47%가 뚜렷한 의견이 없는 중간 수준(-3~+3), 28%가 안티페미니즘 성향(-4~-12)으로 분류되었다.

페미니즘 성향별 난민 수용에 대한 태도를 보면 친페미니즘 집단이 훨씬 관용적이다. 찬성 응답이 중간층에서는 31%, 친페미니즘 층에서는 49%이다(〈그림 2〉 참조). 안티페미니즘 성향에서는 23%에 그쳤다. 페미니즘 성향이 높을수록 난민에게 호의적이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난민에 대한 공개적 반대와 혐오를 표출한 집단은 온라인상에서 과다 대표되었을 뿐 전체 여론 차원에서는 실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유사한 결과로, ‘래디컬 페미니스트’ 그룹에겐 배제의 대상인 ‘동성애자’에 대해서도 친페미니스트 그룹의 거리감(‘거리감 크다’ 47%)이 안티페미니즘 그룹(‘거리감 크다’ 67%)보다 가까웠다. 결국 페미니스트 성향의 시민들은 성소수자 등 국내 소수자 그룹은 물론 외부의 소수자인 난민에 대해서도 더 우호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이 관계는 카이제곱 검정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즉 래디컬 페미니즘 담론은 한국의 페미니즘 성향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다.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가진 일반 시민은 생물학적 여성 범주와 국경의 경계를 넘어 내외 집단의 소수자에게 연대하는 “경계 없는 페미니즘” 성향에 가깝다.

질문 2. 우파 권위주의가 난민 반대 주도?

이제 다른 극단에 위치한 우파 포퓰리즘이 반(反)난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보자. 우파 권위주의 성향은 망가넬리-라타지 등(Manganelli-Rattazzi et al. 2007)이 정립한 7개 문항 7점 척도를 사용하여 자유주의 성향(-4~-21), 중간(-3~+3), 우파 권위주의 성향(+4~+21) 등 세 집단으로 분류했다.

놀랍게도, 우파 권위주의 성향과 난민 수용에 대한 태도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그림 3〉 참조). ‘난민 수용 찬성’ 응답을 보면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에서 38%인데, 자유주의 성향 층에서도 40%로, 두 집단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간층에서는 ‘난민 수용 찬성’이 25%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는데,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

이 결과의 함의는 무엇인가. 난민 반대 정서의 뿌리를, 외부 집단을 배척하며 정체성 결속을 강조하는 우파 포퓰리즘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일부 극우적 인종주의, 우파 권위주의 성향 커뮤니티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동성애자에 대한 거리감에서는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성향으로 분류된 사람들 중에서는 성소수자에게 거리감을 크게 느낀다는 응답이 48%에 그쳤지만, 중간 집단에서는 61%, 우파 권위주의 성향 집단에서는 68%에 달했다. 우파 권위주의에 기반한 포퓰리즘의 동원이 앞으로 한국에서도 작동한다면, 외부 집단보다 내부 성소수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유발하는 데서 더 효과를 볼 것이라고 시사한다.

질문 3. ‘경계’ 인식은 부정적이기만 한가?

전통적으로 국가, 민족, 인종 등의 ‘경계(border)’ 인식은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외부 집단에 대한 배타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국/애족’, ‘국가 자부심’ 등 국가나 민족 단위에 대한 심리적 애착을 ‘국뽕’으로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국가 경계’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시민성이 정답이고, 국가 차원의 경계의식은 권위주의나 포퓰리즘과 짝을 이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런 통념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 국가나 소속 사회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강할수록, 외부 집단인 ‘난민’에 대한 관용적 태도가 강했다. ‘대한민국(경계) 국민임이 자랑스럽다’고 느낄수록, ‘우리나라는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신뢰가 강할수록, 난민 수용에 찬성하는 비율이 유의하게 높다.

인권의식이나 외부 집단에 대한 관용적 태도가 국가/민족 단위를 토대로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 입장을 ‘민주적 민족주의’ 혹은 ‘경계를 가진 민주적 시민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공동체의 공간 제약 속에서 시민들의 자율적 통제권(주권)이 실현되고 이를 누리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시민이야말로 외부 집단에게도 보편적 인권 원칙을 적용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자신감을 경험해야 외부 집단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적 민족주의’론의 문제의식이다.

국가 자부심과 사회에 대한 신뢰는 이념적 성향이나 가치관 못지않게 해당 시점의 ‘경제적 안정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불안과 위협 의식’이 강해지면 외부 집단에 대한 관용적 태도 역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그림 1〉을 보면, 한국 경제 상황의 악화, 낯선 외부 공동체의 갑작스러운 등장 등이 한국 시민들의 우려감을 키워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정치적 올바름’이나 ‘이념적 규범’으로 설득하는 것은 역효과가 커 보인다. 정부는 난민에 대한 좀 더 풍부한 정보를 지속 제공하는 한편,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의 불안정성에 적극 대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난민법 개정 법안은 타깃을 잘못 설정하고 있다. 국민들이 호소하는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불안에 대처하기보다는 주로 ‘가짜 난민’ 색출과 억제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난민을 조기에 발견하고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는 눈에 띄지 않는다. 2018년 이후 예멘 난민에 대한 이해도가 완만한 속도로나마 높아졌고, 딱 그만큼 난민 반대의 강도도 약해졌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한울·이동한 (한국리서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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