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또다른 '과거사' 남긴 검찰과거사위

정효식 입력 2021. 1. 20. 00:25 수정 2021. 1. 20.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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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사회1팀장

과거는 오래 지속된다. 현재를 형성하고 때론 미래를 판단하는 준거자료가 된다. 은폐되거나 오도됐던 진실이 드러나 역사가 새로 쓰이기도 한다.

2017년 12월 발족해 17개월 활동한 검찰과거사위원회도 진실 규명을 목표로 출범했다. 당시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검찰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랬던 과거사위가 또 다른 ‘과거사’를 만들어 냈다는 논란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을 조사하던 과거사위 산하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파견 이규원 검사가 2019년 3월 23일 새벽 0시 10분 김 전 차관의 인천공항 출국을 불법으로 제지했다는 내용이다. 이 검사가 당시 범죄 피의자가 아니던 김 전 차관을 2013년 무혐의 처분 사건과 서울동부지검 내사1호란 유령사건을 기재한 허위 공문으로 김 전 차관을 긴급 출국 금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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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은 수사기관도 아닐뿐더러 법적 근거 없이 법무부와 대검찰청 훈령으로 만들어진 임의 조직이다. 이 검사는 파견 신분이라 수사권이 없고, 긴급출금 권한도 없는 상태였다. 출입국관리법령은 ‘수사기관의 장’만이 긴급출금을 요청할 수 있게 돼 있다. 과거 검찰의 인권 탄압과 불법 수사를 바로잡겠다던 과거사위·진상조사단이 거꾸로 위법하게 국민의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을 벌였다.

법무부는 “파견 검사인 이 검사가 윤중천으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중대 혐의로 김 전 차관을 내사중이었고, 국민적 의혹 대상자가 국외로 도주할 우려가 있던 급박하고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해명한다. 과거사위가 실제 출국금지 이틀 뒤 김 전 차관을 같은 혐의로 검찰에 정식 수사 권고했다는 게 근거다.

‘수사 권고→형사 피의자 입건 및 출국금지’의 절차를 거꾸로 했다. 이 혐의 마저 2019년 11월과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과거사위는 김 전 차관 이외 다수 검찰 관계자가 별장을 갔다는 의혹도 제기했지만 검찰 재수사에서도 밝혀내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과거사위가 같은 해 5월 말 활동을 종료하고도 백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혹 제기의 근거가 됐던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면담 보고서’ 조차 남기지 않았다. 정한중 위원장 대행은 “김학의 조사 보고서 등을 법무부에 넘겼지만 민감한 내용이라 비공개했다”고 말한다. 진실을 밝히자고 과거사위를 꾸리고 스스로 진실을 베일에 가려버린 셈이다.

정효식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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