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의 문화 예술 톡] 예술이 인플루언서가 되는 사회

2021. 1. 2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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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중학교 3학년 딸이 구슬을 꿰어 목걸이와 귀걸이·반지 등의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디폽(Depop)이라는 앱을 통해 팔고 싶다고 했다. 재료를 사준 지 한 달 만에 이거 저것 만들더니 앱을 통해 또래 소녀들에게 목걸이를 팔았다. 15살 소녀의 첫 사업이 생각보다 빨리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처음엔 다양한 액세서리를 만들던 딸아이는 이제는 잘 팔리는 모델만 주로 만들고 있다.

문득 몇 년 전 만났던 런던의 한 갤러리스트가 생각이 났다. 주위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동네의 작고 허름한 빈 공간에서 갤러리를 시작한 그는 이제 런던의 럭셔리 상점이 밀집한 메이페어에서 커다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의 영향력을 적극 이용한 젊은 세대 갤러리스트로서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들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소위 ‘좋아요’가 많은 작가들을 영입하였고 SNS를 보다 자유롭게, 그리고 보다 자신있게 이용할 줄 아는 젊은 미술 소비층의 기호에 맞는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판매해왔다. 그래서 그 갤러리의 인스타그램에는 어떤 인테리어에나 무난하게 걸맞은 작품들, 하나의 이미지를 보기 위해 최소한의 시간을 소비하는 빠른 감각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가득하다.

문화예술톡

이쯤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창작이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예술 작품의 현재 트렌드에 맞는다고 하여 유사한 작품들을 쏟아내는 것은 옳은 걸까? 낙서 마을이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었다고 하여 지자체에서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 대대적으로 유사한 낙서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 과연 옳은 정책일까? 스위스의 한 큐레이터이자 미술 기자는 코로나 록다운 기간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하루에 한 점의 예술품을 소개하며 작품과 매치되는 양말을 골라 신고 그 사진을 올리면서 유명세를 탔다. 각각의 예술 작품에 자신의 기호를 맞추고 자신의 삶을 작품과 매치시켜 보려는 개인의 노력을 풍자한 그의 포스팅은 재빠르게 이미지들을 스크롤 다운하며 자신의 인테리어와 유행에 맞는 작품을 찾는 사람들에게나 이에 맞는 예술 작품을 생산해내는 예술가들에게나, 이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갤러리들에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액세서리나 패션, 기타 소비재처럼 다수의 기호에 맞추어 생산해야 하는 것들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피땀 같은 구슬을 하나하나 꿰어 무에서 유일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의 영역은 이 창작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플루언서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작가와 갤러리들은 창과 방패를 든 심정으로 철통같이 이를 사수해야 한다. 기호가 창작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이 우리 사회의 기호와 정신을 지배하는 최고의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한다.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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