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사랑받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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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차장 한쪽에 세워져 있던 차 한 대가 눈길을 끌었다.
그 검은 차는 마치 초원에 군림하는 공룡처럼 우람하고도 늠름해보였다.
정말 그 고래 같고, 탱크 같고, 공룡 같은 차는 그 옆에 세워져 있던 고가의 수입브랜드 차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아 보였다.
그 차에 마음이 뺏겨 후면까지 일부러 살펴보는데, 뒷문 차창에 메모 하나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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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나는 아직 운전면허증도 없다. 몇 번 면허를 따기 위해 도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차 안에서 밀린 잠을 쪽잠으로 자거나, 막힌 원고의 다음 줄거리를 생각하는 나로서는 운전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이 차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무료하게 졸고 있지 않고 바람을 가르며 세상의 길들을 내달렸을 것이다. 고속도로도 달리고, 국도도 달리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샛길도 달리고, 때로는 스스로 길을 만들면서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다했을 것이다. 차가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간지럽다고, 바퀴가 간지럽다고. 달리고 싶다고.
그 차에 마음이 뺏겨 후면까지 일부러 살펴보는데, 뒷문 차창에 메모 하나가 붙어 있었다. 초보운전이거나 안전운전 같은, 배려와 안전운행을 당부하는 경고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내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위급 시 아이부터 구해주세요. 남아, 5세 혈액형 AB형.’ 위급한 상황이면 아이부터 구해달라니. 장식처럼 붙여놓은 많은 메모와 문구들을 봤지만 이런 내용은 처음이었다. 아이의 인적사항에 대해 꼼꼼하게 표기해놓은 부모의 마음에서 아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졌다.
생각하기 싫지만,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사람일은 알 수 없는 법. 사고가 났을 때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이 메모는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이정표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그 메모를 바라보며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그 부모에게 아이는 자신들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정말 이 차의 주인은 아이의 안전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이 차를 샀는지도 모른다. 부모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장차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까. 그 아이의 미래가 궁금했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가 고마웠다. 그래, 부모의 모습은 본디 이러하지 않던가. 자식을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을 내놓는 것. 세상이 제 아무리 각박하고 힘들다 해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가없는 것이다. 헌데 언제부턴가 아이를 주쳇덩어리처럼 여겨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뉴스들이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어지럽힌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양식은 사랑이고, 아이들은 그 사랑을 먹고 자란다. 아이들에게는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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