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범죄' 감형 위한 준법감시위..삼성은 설득도 실패했다

유설희·박은하 기자 2021. 1. 1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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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수감되며 삼성이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간 가운데 19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 회사 로고가 보이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재판부, 국내 형법과 안 맞는 제도 도입해 특혜 비판도
미국은 범죄 시점 운용 전제로 개인 아닌 법인에 적용
변호인단, 실효성 입증 못해…준법감시위 행보 촉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결정적 요인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양형에 반영되지 않은 데 있다. 재판 와중에 설치한 준법감시위를 양형 조건으로 내건 재판부의 방침이 애초 무리했던 데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입증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집행유예’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삼성 준법감시위의 앞날에도 관심이 쏠린다.

준법감시위를 둘러싼 논란은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의 정준영 재판장이 2019년 10월 첫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준법감시제도’를 설치하라고 주문하며 시작됐다. 실효성을 갖춘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한 기업은 형사책임이 불거졌을 때 형을 깎아주는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을 참고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형법체계에 맞지 않는 미국 기준을 끌어와 이 부회장에게 특혜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셌다. 이 부회장은 범행 후 재판 과정에서 준법감시위를 설치했고, 국정농단 사건은 삼성전자 ‘법인’이 아닌 이 부회장 ‘개인’이 기소된 범죄라는 점 때문이다. 삼성전자 외 다른 관계사까지 이 제도를 강제하는 것은 법원의 월권이란 지적도 있었다. 이런 논란 속에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관계사 7곳이 가입된 준법감시위가 지난해 1월 출범했다.

재판부가 결심 공판을 앞두고 낸 ‘시험문제’에 이 부회장 측이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것도 판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에 역대 삼성 총수가 관여한 8개 범행의 위험 유형화 작업이 이뤄졌는지 답변하라고 석명 요구를 했다. 조직 내에서 이 같은 작업이 이뤄져야 준법조직이 실효성 있게 기능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이 부회장 측은 고 이건희 회장의 차명주식 보유 사건에 대해 “현재 차명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증거를 사업지원 TF가 인멸한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업지원 TF는 과거 미래전략실과는 다른 조직”이라고 답했다. 19일 이 부회장 사건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이 같은 답변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면서 “임직원을 동원한 차명주식 보유 역시 관리되어야 할 법적 위험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또 “구조조정본부,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을 통해 위법 행위가 이뤄지는 것에 대한 대응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며 “준법감시위 조직만으로 계열사 대부분에 대해 실효적 감시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판결이 준법감시제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기업 준법조직을 통해 기업범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준법감시조직이 의무가 아닌 반면 국내에서는 상법상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의 기업은 준법지원인을 두게 돼 있다. 이번 재판을 통해 기업들이 의무에 따라 둔 준법지원인을 근거로 감경을 요구할 근거가 생겼다는 것이다. 반면 ‘경제개혁연대’의 노종화 변호사는 “새로운 시도를 한 이상 앞으로 준법감시조직을 잘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준법감시위가 외부감사조직 등 법률상 조직과 상호보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 내에서는 “무리한 재판 진행이었다”는 비판과 “재판에서양형심리에 좀 더 노력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엇갈렸다.

삼성 준법감시위는 21일 정기회의, 26일 7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회의를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준법감시위 관계자는 “사업지원TF의 준법감시 기능 강화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유설희·박은하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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