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싸움, 위기의 순간들..'우리는 어떻게 극복했나?'
[앵커]
코로나와 싸워온 지난 1년 돌아보겠습니다.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집단감염부터 서울 도심 집회 이후의 2차 유행, 그리고, 지금 3차 유행까지.
숱한 고비들을 어떻게 넘겨왔는지 양민철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첫 번째 위기는 신천지 대구교회 관련 대규모 확산에서 시작됐습니다.
백 명대 확진자는 일주일 새 9백 명대로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접촉자 격리와 역학조사는 쉽지 않았습니다.
부정확한 신도 명단 제출, 검사 거부 등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김강립/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지난해 2월 : "혹시 누락되거나 고의로 (신도) 명단이 제출되지 않았을 경우 저희는 방역 쪽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할 계획입니다."]
의료 역량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위기 의식은 더 커졌습니다.
코로나 전담병원이 지정되고 전국의 의사, 간호사가 대구·경북으로 모였습니다.
[정세균/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지난해 2월 : "대구를 위한 지원이 절실합니다. 모집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8백 명이 넘는 의료인들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봉사를 자원했습니다."]
하지만 병상 부족이 심해지며 치료받지 못하고 집에서 숨지는 등 의료 시스템 붕괴 위험까지 제기됐습니다.
최근 3차 유행 때도 중환자 병상 문제는 반복됐습니다.
특히 수도권은 한때 남은 중환자 병상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고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확진자 수도 수백 명까지 늘어났습니다.
병상 확보 행정명령과 민간병원의 협조로 간신히 위기를 넘어섰습니다.
[엄중식/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 "중환자 치료 병상을 얼마를 소개를 해서 대기 병상으로 준다던지 지역별로 몇 개의 병상을 확보한다던지 하는 그런 사전 전략이 부재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임시 선별 검사소는 3차 유행의 중심인 숨은 감염자를 찾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됐고, 강력한 거리두기와 특히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는 확산세 억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결국 위기 때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고통을 동반한 국민들의 자발적인 방역 실천이 극복의 원동력이었다는 평갑니다.
KBS 뉴스 양민철입니다.
촬영기자:안민식/영상편집:김근환/그래픽:김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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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철 기자 (manofstee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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