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공공의료, 그 틈을 메운 의료진의 땀..'불안한 선전'
[경향신문]
모범 방역 국가 찬사 불구, 의료 현장에선 “사람 대우해달라”
전체 병상의 10% 수준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환자 80% 떠맡아
전문가들 “코로나19 계기로 공공의료 체질 바꿀 기회 삼아야”
절반의 성공이었다.
발빠른 진단검사와 동선 추적, 격리치료로 요약되는 ‘K방역’은 전 세계의 눈길을 샀다. 공적마스크, 드라이브스루 검사, 생활치료센터 정책도 빛을 발했다. 5㎏짜리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헌신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에 동참했다. 외신들은 의사소통의 개방성과 투명성, 공동체의식을 K방역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유행을 거듭할수록 병상 부족과 인력난이 심각해졌다. 다음 유행에 대비해 병상·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는 좀체 통하지 않았다. 의료현장에서는 “영웅·천사라는 수식어는 필요 없다. 사람으로 대우해달라”는 절규가 터져나왔다. K방역 최전선의 의료진은 지금도 하루하루 자신을 ‘갈아 넣고’ 있다.
지난 1년, 한국 사회는 공공의료를 소홀히 여긴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병상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국내 전체 병상의 10% 수준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치료의 80%를 떠맡았다. 이미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메르스 숙주는 낙타가 아닌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라며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중앙·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 등 대책도 나왔다. 그러나 당장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취약한 공공의료체계는 숫자로 드러난다. 2019년 12월 말 국내 공공의료기관은 221개다. 전체 의료기관의 5.5%, 전체 병상의 9.6%다. 공공병상 비율이 일본은 27.2%, 독일 40.7%, 프랑스 61.6%, 미국은 21.5%임을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민간이 의료 공급을 주도하다보니 수요가 많은 대도시에 집중돼 지역 간 의료격차도 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공의료체계를 다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임준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장은 19일 “인구 15만명을 기준으로 나눈 전국 70개의 중진료권 가운데 300병상급 병원(종합병원)이 없는 곳이 20~30곳”이라며 “이 진료권에 제대로 된 인력을 갖춘 공공병원을 만들고, 의지있게 공공재 역할을 하는 민간병원에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정부는 2025년까지 지역 공공병원을 20개가량 신·증축하고 병상 5200여개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민간병원의 공공성 강화도 과제로 꼽힌다. 3차 대유행 속 병상 부족 사태는 정부가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에 허가 병상의 1%를 코로나19 중증환자 병상으로 내놓으라고 명령하면서 해소됐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응단장(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원장)은 “코로나19 대응이 마치 공공병원의 일처럼 인식된 것이 지금까지 한국이 겪은 오류의 원인”이라며 “단순히 동원하고 차출하는 차원이 아니라 민간의료기관이 의료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위기는 공공의료의 체질을 바꿀 기회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의료인력이 공공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대로 된 교육, 규모 있는 공공병원 확충, 일하고 싶게 만드는 인프라 등 세 가지 트랙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5년 이내에 10% 수준의 공공병상을 20%까지 끌어올리되 동떨어져 있는 공공병원과 국립대병원 간 의료 전달체계를 만들고 의료진을 공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공공의대를 통해 공공의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법안은 이해집단의 반발에 밀려 잠들어 있다. 5년간 잠자던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도 코로나19를 겪고서야 속도를 내는 중이다. 공공병원 확충 역시 예비타당성 조사와 예산 확보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중요한 사회안전망을 경제성의 잣대로만 바라보는 ‘적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땜질 처방으로는 신종 감염병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게 지난 1년의 교훈이다. 당장 올봄 4차 유행이 닥칠 수 있다. 3차 대유행의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접어든 지금, ‘이번 고비도 잘 넘겼다’고 자찬할 때가 아니다. 임승관 단장은 “숨 돌릴 겨를이 생기면 우리가 할 일은 지금보다 2~3배의 확진자가 나오면 어떡할지를 의제로 설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도현·이창준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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