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트럼프의 뒷모습
[경향신문]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퇴장’을 거론할 때 자주 인용되는 시인 이형기의 시 ‘낙화’ 첫 구절이다. 이 시구는 적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집권 4년은 물론 대선 후 ‘79일간 권력이양기’에 그가 보여준 모습은 아름다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당선자에게 축하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추악함의 정점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불참이다. 트럼프는 20일 오전(현지시간) 열릴 취임식 참석 대신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원을 타고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셀프 환송’을 연다고 한다. 그 후에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플로리다주 거주지 마러라고로 떠난다. 현직 대통령의 취임식 불참은 역대 44명 대통령 가운데 2대 존 애덤스, 6대 존 퀸시 애덤스, 8대 마틴 밴 뷰런, 17대 앤드루 존슨, 28대 우드로 윌슨 5명밖에 없던 일이다. 취임식 패싱은 트럼프의 마지막 ‘몽니’다. 화합과 통합의 상징인 취임식에 불참함으로써 갈라진 미국에 기름을 부으려는 의도다.
“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나라의 성공이다. 나는 당신을 열렬히 응원한다. 행운을 빈다.” 재선에 실패한 41대 조지 HW 부시가 떠나기 전 후임자인 빌 클린턴에게 남긴 손편지 내용이다. 손편지 쓰기는 부시 전임자인 로널드 레이건이 시작한 아름다운 관행이다. 트럼프도 버락 오바마로부터 손편지를 받았지만 바이든에겐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오바마의 손편지는 “우리의 선조들이 피 흘려 싸워 지킨 법의 지배와 권력 분립, 평등권과 인권 등과 같은 민주적 제도와 전통의 수호자가 되도록 해준다”는 대목 때문에 트럼프의 실패를 예고한 것으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트럼프는 취임 후 오바마 손편지를 자랑했지만 그의 충고를 새겨듣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역대 가장 실패한 대통령상을 남겼다. 대선 불복, 의회의사당 점령 선동, 하원 탄핵 2차례 가결은 초유의 기록이다. 잘못된 지도자의 선택이 가져온 대가는 컸다. 하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뿌린 분열의 씨앗 때문이다. 트럼프는 떠나지만 ‘트럼프 유령’은 여전히 전 세계를 배회할 것이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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