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상법 개정,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당 주도로 금융복합기업집단 감독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상법개정안 모두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었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전속고발권이 유지되고 감사위원 선임의 의결권 제한범위가 축소되었으나 경제계는 시행시기의 1년 유예를 요청하는 등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상법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감사위원 선임에 있어 대주주 의결권 제한에 대한 우려가 크다.
현행 상법에서 대규모 상장회사는 주주총회에서 먼저 이사를 선임한 후 선임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일괄선출 방식을 따르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소수주주 권한 강화를 목표로 한 이번 개정안에서는 최소 1인 이상의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하여 선출하여야 한다. 또한 감사위원의 사외이사 여부에 관계없이 발행주식 총수의 3%를 초과하는 주식의 의결권행사가 제한된다.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모든 주주의 의결권이 개별적으로 3%에 한정되어 인정된다.
반면 이 3%룰은 사내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주주간에 차등 적용되어 일반주주는 개별적으로,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주식과 합산하여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개정을 통해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제고하여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거와 동일한 비판과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먼저 현행 상법은 1주 1의결권 원칙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견해이다. 특히 감사위원은 이사의 지위가 먼저 부여되므로 주주가 이사를 선임하여 경영을 위임하는 주식회사의 구성과 지배구조에 대한 기본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 과도한 주주간 차별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상법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후 집중투표제가 도입되어 의결권 제한이 중복된다면 소수주주가 이사회를 장악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소수주주는 사회적 약자와 달리 개인 선택의 문제이므로 인도주의가 아닌 공정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처럼 대주주의 의결권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정안을 통해 단기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해외 헤지펀드들의 경영권 위협도 간과하기 어렵다. 감사업무를 통해 주요 정보를 열람하고 대주주 및 경영진을 견제 및 감시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기업의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의 일원으로 의사결정과 업무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부 투자자의 경영참여와 이로 인한 경영권 경쟁은 당연하지만 법적기반을 외국계 투기자본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경계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의 기업관련 법률과 규제는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개별 기업에 적합한 최선의 지배구조를 추구하기를 요구하고 경영참여를 통해 의사를 개진하는 것은 정당한 주주의 권리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정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지배구조의 정답, 즉 좋은 기업지배구조의 단일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 것은 물론 실제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강제하여 시행착오를 겪기에는 기업과 경제전체가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나 크다.
기업지배구조는 기업경영의 감시와 감독을 넘어 가치창출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이분법적 관점을 넘어 기업의 장기가치를 제고하는 것으로 논의가 전환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랑스의 테뉴어 보팅 제도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6년 상장기업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하여 주식의 보유기간에 따라 추가적인 의결권을 부여하였다. 단기의 시세차익을 우선하는 투기자본과 구분하여 기업의 장기가치를 제고하는 주주에게 경영참여의 권리를 더 크게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들이 주주와의 소통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강화해야 한다. 주주총회의 특정한 안건에 대해 주주를 설득하는 일시적 소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접촉을 증가시켜 기업과 투자자의 거리를 좁혀 나가야 한다. 투자자 외에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교환하여 기업의 의사결정과 장기적 기업 목표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함과 동시에 더 나은 기업지배구조가 현실화될 것이다. 원문=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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