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문치'의 나라였지만 '무치'의 나라기도 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2021. 1. 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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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독일 라히프치히 그라시박물관 소장 갑주의 구성품. 갑옷과 투구와 함께 전하는 갑주함, 투구 장식함, 투구 싸개, 보자기 등 갑주 세트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조선은 문치(文治)의 나라만이 아니다. 무치(武治)를 겸비한 나라다’.

국립고궁박물관은 19일부터 3월1일까지 조선 왕실의 군사적 노력과 군사의례에 대해 소개하는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를 개최한다. 김동영 국립고궁박물관장은 “박물관 재개관에 맞춘 이번 특별전은 조선 왕실의 군사의례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라며 “조선이 문치뿐 아니라 무치를 겸비한 나라였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군사들이 착용한 갑옷과 투구, 무기와 다채로운 군사 깃발 등을 포함해 176건의 다양한 유물들이 한자리에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해 독일 라히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과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조선 시대 갑옷과 투구, 무기 등 약 40여 점도 특별히 들여왔다. 이 유물들은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영진총도 병풍’. 정조 대에 편찬한 병서 <어제 병학지남> ‘영진총도’에 실려 있는 각종 무기와 깃발의 배치를 그린 2폭 병풍 8점이다. ‘영진총도 병풍’은 글자와 선으로 표현된 ‘영진총도’를 깃발, 무기, 기호 등을 다양한 색으로 그려 보다 쉽게 진의 형태와 진형의 운영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병풍의 상단에 동서남북 각 방위를 나타내는 묵서가 있어 방위에 따라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군사의례는 왕이 국가를 통치하는 다섯 가지 국가의례인 오례(五禮) 중 하나이다. 국가의 군사적 활동을 의례로 정리한 내용이다. 조선 왕실은 군사의례를 통해 왕이 군통수권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을 부여하고 왕실의 권위를 높였다. 임지윤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특별전은 조선 왕조의 영속을 지탱하고자 했던 왕의 군사권 장악을 위한 노력과 조선 왕조의 군사적 면모를 군사의례를 통해 조명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특별전은 ‘조선 국왕의 군사적 노력’과 ‘조선 왕실의 군사의례’ 총 2부로 구성된다.

국왕이 함께 활쏘기를 한 신하에게 내리는 문서인 ‘고풍(古風)’. 1792년 정조가 활쏘기를 한 뒤 함께한 신하들에게 상을 내린 내용을 적은 문서이다. 하사품을 받은 신하가 오재순이라는 것, 왕의 활쏘기 성적, 하사품은 다음에 지급하겠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왕의 활쏘기 성적을 보면, 총 50발 중 49발을 맞춘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1부는 1592년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로 나뉜다. 주요 왕대별로 편찬된 병서와 회화작품, 임진왜란과 진법에 관한 영상을 함께 전시한다. 조선이 군사적으로 국가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모습을 살펴본다는 취지이다. 2부는 왕을 중심으로 거행한 군사의례를 소개한다. 강무의, 구일식의(救日食儀·해를 구하는 의례), 나쁜 기운을 쫓는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 대사의(大射儀), 선로포의(宣露布儀)와 헌괵의(獻괵儀), 국왕의 군사권을 과시하는 대열의(大閱儀) 등 6가지 군례의 의미와 내용을 의례별로 사용되는 관련 유물로 조명한다.

‘발병부’. 군사를 동원할 때 사용하는 징표이다. 한 면에는 ‘발병’, 다른 한 면에는 해당 지역 명칭을 적어 왼쪽은 궁에서, 오른쪽은 해당 지역의 병권을 가진 지휘관이 보관하였다. 왼쪽과 오른쪽 발병부가 합쳐질 때만 군사를 징발할 수 있었다. 전쟁뿐 아니라 사냥 훈련 의례인 강무의와 같이 각 지역의 군사를 특정 지역으로 소집하여 훈련할 때도 사용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예컨대 왕이 군사를 동원해 사냥하는 형태의 군사훈련인 ‘강무의(講武儀)’는 사냥한 짐승을 종묘 제사에 올릴 때 행하는 의례다. 군사를 동원하기 위해 사용한 징표인 발병부(發兵符), 말안장과 발걸이, 군사복식으로 착용한 철릭(평상의 군복)과 주립(朱笠·당상관이 착용하는 붉은 색 갓) 등이 전시된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군복을 입은 왕의 모습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철종 어진’과 어진(御眞) 속에 그려진 군복, 지휘봉, 허리띠, 깍지, 칼 등과 유사한 유물을 함께 구성·전시한다.

조선의 군사 신호 체계인 ‘형명(形名)’. 혼란한 전투 상황 속에서 군사 명령을 전할 때 시각 신호와 청각 신호를 이용했는데, 눈으로 보는 것을 ‘형(形)’이라 하고 귀로 듣는 것을 ‘명(名)’ 이라 했다. 군사 훈련 의례인 대열의를 행할 때도 실전과 같이 형명을 이용해 신호했다. 깃발의 종류, 색, 흔드는 모양 등으로 시각 신호를, 악기의 소리, 부는 횟수와 길이, 두드리는 횟수와 속도 등으로 청각 신호를 전달했다. 깃발, 악기, 화약 무기가 어우러진 조선의 군사 신호 체계는 명령을 전달할 뿐 아니라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국왕의 군사권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구일식의’와 ‘계동대나의’는 자연현상에 대해 군사력으로 상황을 안정시켜 일상을 회복하려 했던 상징적 군례다. ‘구일식의’는 해가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현상인 일식을 구제하기 위해 거행했던 의례이다. 왕과 신하들이 일식을 맞아 경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계동대나의’는 역병을 쫓아내기 위한 의례다. 역귀를 몰아내는 역할을 한 인물이 쓰는 방상시(方相氏) 가면은 조선시대 유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대사의’는 왕과 신하가 활쏘기로 화합하는 군례이다. 군자의 덕을 함양하는 수단인 인격 수양 행위로 인식된 의례다. 1743년(영조 19) 영조가 중단되었던 대사의를 200여년만에 다시 거행하고 기록한 <대사례의궤>와 기록화로 남긴 <대사례도>, 참여자의 복식, 활과 화살, 활을 쏠 때 사용하는 부속구 등의 유물이 전시된다.

‘선로포의’와 ‘헌괵의’는 전쟁의 승리 과정을 적은 노포와 적의 잘린 머리 등을 거리에 내걸어 승리를 대대적으로 알리고자 한 의례다. 1744년(영조 20) 영조가 <국조속오례의>에 정식 군사의례로 수록하여 국왕의 굳건한 권위를 명시하고자 한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 전시에서는 노포를 걸고 적의 머리를 왕에게 바친 후 성 밖에 내걸어놓는 과정을 만화영상으로 상영해 이해를 돕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대열의’이다. ‘대열의’는 왕이 직접 주관하는 대규모 진법 훈련이자 최대 군사의례다. 대열의 전시공간에서는 진법 훈련에 필수적인 갑옷과 투구, 무기, 그리고 지휘 신호용 깃발·악기·화약무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독일 라히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된 갑옷과 투구, 갑주함(갑옷과 투구 보관함), 투구 싸개, 갑옷 안에 입는 내의, 보자기 등 일습 유물은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으로 보존상태 또한 매우 좋다.

‘갑주’. 적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몸에 입는 갑옷과 머리에 쓰는 투구를 함께 일컬어 갑주라고 한다. 실제 전투는 물론 강무의나 대열의 같은 군사의례에 착용했다.|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 갑옷과 투구 공간은 대열의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든 대형 영상 화면을 배경으로, 왕의 시선에서 바라보듯 장수와 병사들이 사열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연출했다”고 전했다. 전시회 관람을 위해서는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사전예약을 하거나 현장에서 접수하면 된다.

다만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사전예약과 현장접수를 합하여 시간당 110명, 일일 최대 900명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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