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 때 우산 뺏을 순 없지만..부실 리스크 어쩌나

김인경 2021. 1. 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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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코로나 대출만기·이자상환 유예로 가닥
"이자도 못갚는 4조 중 30~50%는 부실채권으로 분류"
4대은행 충당금 작년 3Q 1.6조 급증했지만
연쇄부실·경기침체 등 대비 "리스크 더 크게 잡아야" 지적도

[이데일리 김인경 이승현 기자] 금융당국이 또다시 ‘코로나 대출’ 유예를 결정했다. 대출 원금에 대한 만기연장뿐 아니라 이자도 함께 유예해준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시작된 코로나 대출 유예 프로그램은 지난해, 9월 종료 예정이었지만, 당시 코로나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올해 3월까지로 한차례 연장된 바 있다. 이번에 또다시 만기를 미뤄준 셈이다.

하지만 금융권은 ‘비 오는데 우산을 뺏을 수 없다’는 정부의 논리에 공감하면서 하면서도, 차주들의 리스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자납부 재개, 최적의 시기 아니다” 판단한 당국

지난해 2월부터 작년 말까지 전체 금융권의 일시상환 대출 만기연장 규모는 116조원(35만건)에 달한다. 분할상환하는 원금상환 유예는 8조5000억원(5만5000건)이다. 이중 이자 납부 유예를 신청한 이자 규모는 1570억원(1만3000건) 상당이다. 이자유예를 신청한 금액의 대출 원금 규모는 4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자유예를 신청했다는 건 이자도 내지 어려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금융권에서는 이자유예를 신청한 차주의 경우 30~50%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아직까지 감당할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만기연장된 대출 원금 전체(116조원)에 비교하면 이자유예를 신청한 금액은 4% 수준이라는 것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날 “만기연장된 원금 상환이 40만건인데 이 중 1만300건을 제외하고는 이자를 내고 있다”면서 “이자 유예 금액의 대출원금은 금융권이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권의 시각은 다르다.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은 ‘한계기업’과 마찬가지로 리스크 관리를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금융권이 원금상환만 유예하고 이자유예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이유다. 이자가 은행 입장에서는 큰 금액은 아니지만, 이자 납부 능력을 보면 부실 가능성 여부를 미리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국은 원금과 이자를 모두 유예해줘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확산세에 다시 불이 붙으며 방역당국은 거리두기 2.5단계(수도권 기준)를 시행한데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야말로 중소기업·소상공인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지난해 가을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서 이자유예 조치를 중단하는 것은 은행둘에게도, 차주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면서 “무조건 이자상환을 유예하겠다는 게 아니라 상환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비관적 시나리오도 감안해야…“회생 염두 둔 지원으로 전환해야” 목소리도

은행들은 코로나 대출에 대한 원금과 이자상환 유예에 따른 리스크를 줄여나가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예된 이자 원금에서 30~50% 가량은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자가 유예를 신청한 대출원금 4조7000억원 중 1조4100억~2조3500억원 가량은 부실채권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충당금으로 쌓아둔 탓에 건전성 문제는 크게 없을 것”이라면서도 “미룰수록 차주들의 부담도 커지는데다 경기침체 장기화라는 불확실성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더 악화됐을 때를 대비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 4대 은행(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누적 충당금 규모는 1조6226억원으로 2019년 3분기 말(6162억원)보다 2.5배 가량 증가한 상태다. 하지만 영업이익 대비 충당금은 15.3%이다. 미국 4대 은행(BOA, JP모건, 씨티은행, 웰스파고)의 3분기 누적 충당금은 70조원 수준으로 영업이익의 61.4%에 달한다.

더 문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침체가 지속할 있다는 가능성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L자형 침체가 나타날 경우, 대형 금융지주도 우려스럽다”고 우려했다. 이자유예 원금만 디폴트로 접어드는 게 아니라 대출원금 상환에서의 부실, 기업들의 매출 하락 등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는 만큼, 은행권과 당국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은성수 위원장 역시 “1년 넘게 이자를 내지 않았다면 (연장조치 종료 후) 새로운 이자와 기존의 (유예된) 이자를 한꺼번에 내지 않고 분할상환 등을 하도록 해 차주의 부담이 크지 않도록 연착륙을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은행에 좀 더 자율권을 줘야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물론 현재도 가이드라인이 있기는 하다. 이자 상환 유예 대상을 ‘코로나19로 직·간접적 피해가 발생한 중소기업 소상공인’이고 ‘금융기관 원리금 연체나 자본잠식, 폐업 등 부실이 없는 경우’로 제한해 놓았다. 신청 기업은 관련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신청만 하면 대부분 이자상환 유예를 허용해주라는 게 당국의 방침이라는 게 은행권의 지적이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프로그램 시행 초기만 해도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빠르게 자금지원을 해야 한다는 이유 탓에 신청하는 모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이자유예를 해주는 방식이 불가피했다”면서 “이제는 회생가능성을 더욱 염두에 두고 일괄적인 방식보다는 디테일한 상환유예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김인경 (5too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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