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뇌물 1억이나 86억이나 마찬가지? / 박용현

박용현 2021. 1. 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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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공여죄 양형기준을 보면, 뇌물 액수에 따라 4개 구간으로 나눈 뒤 각각 권고 형량을 제시하고 있다.

1억원 이상 뇌물공여는 최대 권고 형량이 징역 3~5년이다(이 부회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뇌물 액수가 크면 그만큼 죄질이 나쁠 것이라는 상식과 배치되는 법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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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공여죄 양형기준을 보면, 뇌물 액수에 따라 4개 구간으로 나눈 뒤 각각 권고 형량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4개 구간이 3천만원 미만, 3천만~5천만원, 5천만~1억원, 1억원 이상으로 돼 있기 때문에 뇌물을 1억원을 줬든 이 부회장처럼 86억원을 줬든 형량을 따질 때는 똑같이 취급된다. 1억원 이상 뇌물공여는 최대 권고 형량이 징역 3~5년이다(이 부회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뇌물 액수가 크면 그만큼 죄질이 나쁠 것이라는 상식과 배치되는 법 현실이다.

형법에는 뇌물수수죄와 뇌물공여죄 모두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지만, 이 가운데 뇌물수수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으로 액수에 따라 10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도록 형량을 높여놨다. 뇌물수수죄의 양형기준도 뇌물 액수에 따라 6개 구간으로 세분화했고, 5억원 이상일 때는 최고 11년 이상~무기징역으로 규정했다. 이 역시 5억원 이상을 한 데 묶어 규정하는 한계가 있지만, 충분히 높은 형량을 적용할 여지가 있다. 반면 뇌물공여죄는 이같은 가중처벌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고액의 구간을 신설해봐야 최고 형량(5년)을 늘릴 수 없으니 별무소용이다.

뇌물죄가 본질적으로 공직자의 직무집행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형벌 규정인 만큼 뇌물을 준 자보다 받은 자를 엄히 처벌하는 게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 형법에서 정한 형량은 서로 같고 뇌물공여 행위도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점에서 두 범죄의 실질적 형량이 지나치게 차이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뇌물공여죄의 최대 형량인 징역 3~5년은 뇌물수수죄의 경우 3천만~5천만원을 받았을 때에 해당한다.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와 함께 횡령죄도 저질렀다. 액수에 따라 가중처벌하는 횡령죄가 합쳐지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양형기준상 권고 형량은 징역 4년~10년2개월로 늘어났다. 여기에 판사 재량으로 형량을 낮춰주는 ‘작량 감경’이 적용돼 최저 한도보다 낮은 2년6개월의 형량이 결정됐다.

시민들의 법감정에 비춰, 86억원이라는 뇌물 규모에 징역 2년6개월의 형벌은 아무래도 약해 보인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재판부의 판단이 주되게 작용했지만, 뇌물수수죄에 비해 현격히 관대할 뿐 아니라 작은 뇌물과 큰 뇌물을 변별하지 못하는 뇌물공여죄 형량의 부조리도 한몫 한 듯하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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