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없이 자란 청소년들에 기댈 '언덕'이 되고싶어요"

허연 2021. 1. 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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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목회포럼 이사장 정성진 목사 인터뷰
신도 7만 대형교회 연합체 개척
23년간 월급 3백만원만 받아
장로들이 책정한 퇴직금도 거절
파주 산속서 수도자처럼 살아
복지재단 '해피월드' 키워
"목사가 돈에 집착하면
교회를 강물에 가라앉게 해"
정성진 미래목회포럼 이사장이 서울 종로 크로스로드선교회 사무실에서 한국 교회를 향해 쓴소리를 던지고 있다. [이충우 기자]
"원로목사 제도는 전근대적인 상왕 제도예요. 그래서 나는 안 한다고 했죠. 교회를 세운 원로목사가 버티고 있는데 후임 목사가 제대로 설교를 할 수 있겠어요."

미래목회포럼 이사장 정성진 목사(66·크로스로드선교회 대표)의 은퇴는 두고두고 개신교의 귀감이다. 정 목사는 자신이 세운 신도 7만명의 대형 교회 연합체인 일산 거룩한빛광성교회에서 23년 동안 월급 450만원을 받으며 담임목사직을 수행했다. 이마저도 150만원을 헌금했으니 월 300만원을 집에 가져간 셈이다. 법인카드도 쓰지 않았다. 2019년 은퇴를 선언했을 때 장로들은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해 수십억 원의 퇴직금을 책정했다. 그러자 정 목사는 그러지 말고 1억원만 달라고 요청한 다음 이마저도 교회에 기부했다. 세습은커녕 퇴직금도 거부하고 파주 민통선 안 산속으로 들어가버린 정 목사의 선택은 진정한 목회의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5가 크로스로드선교회 사무실에서 만난 정 목사는 "나는 교회를 운영하면서 돈을 가장 무서워했다. 돈에 관여하지 않고 전문가들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돈은 교회에 실금이 가게 하고, 결국 교회를 강물에 가라앉게 한다"고 답했다. 정 목사는 젊은 시절 소위 운동권 목사였다. 목민선교회 도시산업선교회 등에 관여하면서 군사정권에 저항했다. "일찍이 사회의식에 눈을 떴어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신문 배달 같은 걸 했고, 공고를 나와 일찌감치 생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죠."

신앙심이 깊었던 정 목사는 뜻한 바가 있어 직장을 그만두고 비인가 야간 신학교를 나와 1983년 탄광촌 전도사를 시작했다. 충북 금왕 광산촌에서 3년을 보낸 그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방송통신대를 거쳐 신학대학원에 들어간다. 1980년대 중반 전국신학대학원대표자협의회 의장으로 전국 시위 현장을 누비면서 투사 목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산에 거룩한빛광성교회를 개척한 건 1997년이다. 소위 '빨갱이'로 낙인찍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는 김창인 목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교회를 시작했다.

"하나님의 도움인지 교회가 잘됐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모든 교회 가용 예산의 51%를 구제와 선교에 쓰기로 했죠. 그래서 만들어진 게 해피월드복지재단이었어요." 해피월드복지재단은 직원만 550명으로 기독교 최대 복지재단으로 성장했다. 파주·일산 지역의 가난한 이웃과 장애인을 돌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북한에 고아원과 양로원을 세우는 등 북한 돕기도 많이 했다.

그는 코로나19 정국을 거치며 일부 개신교회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멈출 줄 몰라서 생긴 일"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역동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울부짖으면서 기도하고 매일 새벽기도가 있는 나라는 드뭅니다. 우리 전통 샤머니즘과 융합돼서 그런 거 같아요. 그렇다 보니 모여서 외치지 못하는 것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요. 멈추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때로는 멈출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데 말이죠."

자신의 성향에 대해 "지금은 중도 보수"라고 말한다. "목사 개인이 정치적인 성향이 있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설교가 정치적이어서는 안 돼요. 교회가 분열됩니다. 운동권 목사들 중 교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목회는 자기 정치 의식을 설파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게 하나님의 진리는 아니잖아요. 진영논리가 뭐예요. 군대 용어잖아요. 상대 진영을 무조건 죽여야 하는 거잖아요."

투사 경력에 설교 잘하기로 소문난 유명 목사였지만 그는 기독교 단체 대표 자리도 거절했다. "2010년 총회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교단에서 사판(事判) 역할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나를 죽여야 교회가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한국 교회의 물량주의에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 교회는 세속주의와 자본주의에 함몰됐어요. 1970년대에 기독교 대학인 이화여대 학생들 설문조사에서도 목사는 배우자 직업 선호도가 이발사보다 낮았어요. 그런데 1990년대 목사가 1위를 했어요. 목사가 부유하게 잘사는 세상이 된 거죠. 이 물을 빼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루터가 나와야 해요."

민통선 안에서 1인 수도자처럼 살고 있는 정 목사는 '비빌 언덕' 사역을 하고 싶어한다. "입양이 안 되어서 시설에서 힘겹게 자란 친구들이 열아홉 살이 되면 500만원을 들고나와야 합니다. 요즘 500만원 가지고 뭘 하겠어요. 그 청소년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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