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무죄 판결 연구결과 오해..천식질환 간 인과관계 가능성 있어"

김우현 기자 2021. 1. 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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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서 판매된 가습기살균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공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유통 업체 관계자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환경과 보건 관련 전문가들은 "재판부가 과학적 인과관계와 논리를 잘못 이해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가습기 살균제 사태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와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의 1심 판결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규홍 안정성평가연구소 유효성평가연구단 단장은 19일 입장문을 통해 "증언이 원래 발언 취지와는 다르게 인용되거나 여러 가지 연구결과를 선별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며 "연구책임자로서 당시 증언 취지를 분명히 하고 과학적 사실의 이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재판에서 CMIT와 MIT가 폐 섬유화와 관련이 없다고 증언했지만 특정 시험에 한정해서 결론 지은 내용"이라며 "특정 시험에 대해 답한 발언을 마치 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증언했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마우스 모델의 한계를 지적한 내용에 대해서도 사람의 천식과 동물에서 나타난 천식 유사증상이 완전히 같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을 뿐 마우스 모델로는 사람 천식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CMIT와 MIT를 쥐의 기도에 투여해 조직 병리, 폐세척액검사, 신호전달물질분석, 폐기능검사를 실시한 결과 사람에게서 나타난 천식과 유사한 소견들이 보였다"며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CMIT, MIT와 사람에게 일어났던 천식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재판부가 연구자들이 제시한 실험 결과를 증거로 채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단장은 연구에서 CMIT·MIT를 기도 내 점적 투여하고 마우스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조직병리, 폐세척액 검사, 신호전달물질 분석, 폐기능 검사 등의 방법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조직병리에서는 사람에게 나타난 천식과 유사한 소견들이 관찰됐다. 폐세척액 검사에서는 천식질환염증에서 주로 작용하는 호산구와의 관련성이 나타났다. 신호전달물질 분석에서는 천식에서 중요한 제2형 조력T세포와의 관련성이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을 종합해 마우스 기도내 점적투여 연구에서 CMIT·MIT가 사람에게 일어났던 천식과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판결문은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섬유화는 관찰되지 않았으며 연구책임자인 이규홍 단장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이규홍 단장은 "쥐 실험을 사람에게 100% 적용할 수 있느냐고 물어 마우스 모델에는 한계가 있음을 말한 것뿐인데, 사람의 천식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고 반박했다. 과학자로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한 증언이 오히려 가습기 살균제와 폐 천식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증거로 인용됐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또 전문가들이 동물실험 결과를 근거로 진술한 내용을 판결에 적용하기 힘든 이유로 전문가들이 제시한 실험이 CMIT와 MIT가 피해를 유발했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중립적인 결론이 도출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엄격한 조건하에 중립적인 결과를 도출하고자 하는 실험과는 달리 연구자의 편향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 단장은 "과학은 일어난 현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며 이는 지극히 과학적인 접근 방식"이라며 "과학적 접근 방식에는 엄격한 조건하에 중립적인 결과를 도출하고자 하는 실험은 있을 수 없고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최적화된 조건을 도출해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단장은 "CMIT·MIT는 연구 초기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다소 어려운 물질이었지만 연구를 거듭하면서 CMIT·MIT라는 물질과 사람에게 나타난 피해 질환들과의 인과관계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다"며 "과학 연구결과들이 올바르게 받아들여져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이달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이 불합리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한국환경보건학회는 "명백한 피해자가 있는데도 동물실험을 근거로 판단했고 CMIT·MIT 독성 실험에서 폐 손상 유발 가능성을 짚었음에도 법원이 이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우현 기자 mnch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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