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검사님들, 결백하다면서요?
[경향신문]
“결백하다면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제출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은가.”
서울남부지검 한 검사는 술접대 의혹을 받는 전·현직 검사 4명을 조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라임자산운용 사태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검사 술접대를 폭로한 후 수사가 예상되자 휴대전화부터 교체했다. 일부는 메신저 대화 내용을 삭제했고, 업무용 PC까지 바꿨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부부싸움으로 다투다 휴대전화를 분실했다” “박람회장에서 머리가 복잡한 상태였는지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둘러댔다.
이들은 한때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에서 한솥밥을 먹은 ‘특수통’ 검사들이다. ‘칼잡이’ ‘저승사자’ 별칭이 따라다니는 이들이지만 과거 자신들이 칼날을 들이댔던 범죄자의 행태를 답습한 것이다. 이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선 동료 검사조차 이들의 변명에 훈계조의 신문을 했을까.
검찰이 피의자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증거인멸 우려다. 지난해 말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두 명이 구속됐다. 직원 휴대전화를 초기화하고, 회사 공용 서버를 공장 마룻바닥 등에 숨겼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임원들은 구속된 후 실형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자료를 은닉해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다.
대검에 따르면 증거인멸 혐의 입건자는 2000년 98명에서 2018년 751명으로 8배 가까이 증가했고, 기소된 인원도 22명에서 59명으로 늘었다.
자신의 범죄 혐의를 덮기 위해 자신의 증거를 인멸한 경우 그 자체로 형사처벌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각자가 독립적 수사기관이라는 검사가 사법적 심판을 앞두고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들은 모두 접대받은 혐의 자체를 부인하는데, 자신의 무고를 증명할 증거를 없앤 것은 모순 아닌가.
검찰청에 출석한 일반 시민이 똑같은 행위를 했으면 이 검사들은 “그럴 수 있죠”라며 넘어갔을까.
김은성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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