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사람이 있는 풍경 / 노은주·임형남

한겨레 2021. 1. 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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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부르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고, 방송이나 일반 매체에서 음악을 하는 모습을 본 적도 한 번 없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김민기이다.

낮은 저음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그냥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 낮고 푸근한 음성으로 위로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힘센 겨울 햇살이 유난히 많이 내린 눈을 흔적 없이 녹이듯, 모두 힘들게 건너가고 있는 이 시간들이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지고, 사람이 있는 풍경을 만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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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직접 부르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고, 방송이나 일반 매체에서 음악을 하는 모습을 본 적도 한 번 없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김민기이다. 오랜 시간 꾸준히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가끔 그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낮은 저음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그냥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 낮고 푸근한 음성으로 위로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노래를 듣노라면 그저 추운 겨울날 햇볕에 따끈해진 툇마루에 앉아서 몸을 녹이는 느낌이 든다.

그중 특히 좋은 곡은 ‘강변에서’라는 노래이다. 원래 제목은 ‘열여섯 살 순이’인데, “서산에 붉은 해 걸릴” 무렵 고된 하루를 보내고 처진 어깨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담겨 있다. 마치 크레파스로 어눌하게 그린 풍경화처럼 편안하고 진솔하다. 일과가 마무리되는 저녁, 공장에 나갔던 열여섯 살 순이도 “강 건너 오솔길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그 모습을 반가워하면서 짠하게 지켜보는 따스한 시선이 좋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하루의 운행을 마치며 돌아가는 서산의 붉은 해가 비춰준다.

나도 이런 해를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전북 부안으로 답사를 간 적이 있다. 내소사, 개암사를 들러서 해가 질 무렵 낙조가 멋있다는 채석강으로 해넘이 시간에 맞춰서 열심히 달려갔다. 그때는 여름이라 사람들이 많았고 자동차를 주차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해변과 평행으로 난 길을 천천히 달리면서 빈자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해는 점점 내 눈높이로 낮아지고 있었고 하늘은 기분 좋게 낮술 먹은 사람처럼 불콰한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저 해가 다 내려가기 전에 빨리 해변으로 나가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그런데 도로 옆 어느 가게에서 내놓은 파라솔이 달린 원탁에 관광객을 상대로 행상을 하던 어떤 아주머니가 둥근 플라스틱 탁자에 엎드려서 쉬고 있었다. 해는 이제 거의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고, 길고 깊이 들어오는 저녁 햇살은 엎드려 쉬고 있는 아주머니의 등과 머리를 솜이불처럼 따뜻하게 덮어주고 있었다. 채석강의 장엄한 해넘이보다도 훨씬 감동적인 그림이었다.

세상을 사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끼리 사는 일이 녹록지 않다.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물러간다는 바이러스 때문에 연말연시의 떠들썩함 없이 새해를 맞았다. 밤새 누군가 문밖에 가져다주는 물건들과 음식들을 보며 문명이 이룬 것들의 허망함과 보고 싶은 사람들을 헤아렸다. 힘센 겨울 햇살이 유난히 많이 내린 눈을 흔적 없이 녹이듯, 모두 힘들게 건너가고 있는 이 시간들이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지고, 사람이 있는 풍경을 만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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