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병원 전 농협회장 "농업은 국민 식량 책임지는 전략산업"
"기후변화 대응해 재해보험 개편..의무가입·정부 보조↑"
"고령화에 농지연금·최저가격보상제 등 소득보장 필요"
[서울=뉴시스] 위용성 기자 = "농업은 한 국가의 기간산업이면서 국민의 식량을 책임지는 전략산업입니다."
40년간 농촌 현장을 누빈 농업전문가 김병원(67) 전 농협중앙회장은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등 유럽 사회 국민 대다수는 보조금을 통해서라도 농업농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며 "농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농업 강국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2019년 11월 농협중앙회장직에서 물러나 1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김 전 회장은 여전히 농업인의 한 사람으로 현장에 있다. 작년 연말에는 자신의 오랜 경험을 살려 농업 정책을 연구하고 발굴하고자 민간 싱크탱크인 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원 설립을 주도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소에서 만난 김 전 회장은 농촌의 디지털화, 고령화 대응, 기후변화 적응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어느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
그에게서 우리 농업의 현 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김 전 회장과의 일문일답.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어떻게 지냈나.
"농업농촌의 변화와 농민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걸어온 40여 년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농협중앙회장 재임 당시 해소해야 할 사안들이 많았으나, 제도적인 한계 때문에 극복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지난해 짧은 시간이지만 총선과 관련한 정치적 시간을 보냈다. 시민 한분 한분, 농민 한분 한분의 말씀이 곧 정치임을 배웠다. 무엇보다 농민들의 어려운 삶을 좀 더 많이, 보다 깊이 보듬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아프게 돌아보는 시간이다."
-작년 코로나19에 재해, 재난까지 겪으며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 목표가 멀어졌다.
"농가소득은 2018년 4207만원을 정점으로 2019년에는 4118만원으로 내려왔다. 짐작컨대 지난해 지표는 유례없이 긴 장마와 폭우, 코로나19로 인해 더 낮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농가소득 향상은 한두 개의 정책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목표를 정하고 정부와 농협이 머리를 맞대 많은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관련해서 보면, 농촌의 유휴토지, 축사 지붕 등을 활용한 태양광 보급사업도 농가소득 향상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정부와 농협의 의지가 관건이다. 함께 지혜를 모아 추진하면 농민들의 삶을 바꿔낼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디지털화, 기후변화, 고령화 등 산적한 농업농촌 과제 중 가장 큰 도전과제는.
"중요하지 않은 과제가 없다. 농업의 디지털화, 스마트팜을 비롯한 농업의 4차 산업화는 미래의 한국농업을 위한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농업 디지털화는 농민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민간기업들의 기술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있어야 농업의 4차산업이 도래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농가소득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에 대해서는 관련 보험을 확대 개편하고, 주요 작물에 대해서는 농가에 의무보험을 적용하고 정부가 보조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따른 열대작물 신품종개발을 통해 소득창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전남에서는 바나나, 애플망고 등을 재배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고령화는 농촌 공동화와 활력을 잃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고령인구에 대해서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공동의 삶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의료, 소방, 교육 등 사회인프라 시설을 집중해 청년 농업인들이 농촌으로 쉽게 들어 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농촌의 활력도 찾고, 디지털 농업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어떤 정책적 접근이 필요할까.
"청년 농업인의 육성으로 농업의 디지털화와 농촌의 활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화는 자본과 기술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 기술을 가진 기업들의 농업 기술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에 익숙한 청년 농업인의 유입, 육성을 위한 정책과 지역별 기후변화에 따른 새로운 작목개발과 발굴이 중요하다.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지역공동시설, 농지연금, 농산물가격 최소가격보장제 등을 통해 농촌사회의 복지와 소득을 보장해줘야 지역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 지역공동체의 유지는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정부정책이다."
-코로나19 이후 식량 자급률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6%, 곡물자급률을 2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안보도 위협받고 있다. 2020년 3월 코로나 이후 베트남, 세르비아, 러시아, 카지흐스탄, 파키스탄 등 많은 국가가 곡물 수출을 중단했다. 2010년엔 우크라이나의 가뭄으로 인한 식량 파동으로 인류사회가 식량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장기화될 조짐이 있는 코로나19와 기후변화는 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지난 2020년은 긴 장마로 쌀 품질이 떨어지고, 쌀 생산량 또한 368만t 수준으로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정부 재고량도 매년 감소 추세에 있다. 특히 쌀 재배면적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2009년 92만4000㏊에서 2019년 73만㏊로 감소했다. 우리 국민들의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실질적인 지표다. 절대농지의 유지 및 강화와 식량안보를 위한 국가차원의 대응을 제도화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농업의 위치는 어떻다고 보나.
"농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의 식량과 안전한 밥상을 책임지는 것이다. 농업은 한 국가의 기간산업이고 국민의 식량을 책임지는 전략산업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미흡하다. 반면 선진 농업강국들은 다르다.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등 유럽 사회 국민 대다수는 보조금을 통해서라도 농업농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농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농업 강국의 전제조건이다."
-농협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농협중앙회는 농민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농협중앙회의 손익보다는 농가 소득향상을 위해 재해보험 등 농민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속적인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협의를 통해 재해보험 조건과 완화하고 혜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시대 상황에 맞는 유통시스템의 혁신도 필요하다. 비대면 상황과 4차산업 시대에 걸맞은 유통개혁을 통해 탄력적 경영경제 주체로서 역할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계획은.
"농협중앙회장 퇴임 이후 여의도에 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 농업농촌을 국민경제 활동의 중심에 둘 수 있는 정책들을 설계하고 있다. 농업을 중심으로 시대적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 그룹과 농촌 현장을 돌면서, 실증적 해법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우리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고 농업과 관련된 제도적 한계들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국회와 정치인들을 적극 설득해 법 제·개정에 힘을 쏟고자 한다. 농촌 공간에 청장년 인구 유입과 일자리 마련이 가능할 수 있도록 귀농귀촌 정책 등 일련의 대안농정 발굴을 하면서 농민들의 삶의 조건과 질을 담보하는 현안들이 국가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u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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