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백악관 실세, 장관급 기관장 면면 살펴보니

박수현 기자 2021. 1. 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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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차기 미국 대통령의 내각이 드디어 온전한 모습을 갖췄다. 오는 20일(현지 시각) 새 행정부 출범을 맞아 장관급 기관장 지명자들과 그 외 백악관 핵심 요직을 맡은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 장관급 기관장

백악관 비서실장 : 론 클레인 前 백악관 비서실장

인대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출신인 클레인은 조지타운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한 헌법·선거법·행정법 전문가다. 로스쿨을 졸업한 직후 바이론 화이트 전 연방대법관의 법률 서기관으로 활동했고, 1989년부터 상원 사법위원회의 변호사로 일하면서 당시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이었던 바이든과 연을 맺었다. 이후 민주당 리더십 위원회의 참모이사로 영입돼 활동하는 등 민주당 고문 역할을 해왔다.

1992년부터는 빌 클린턴, 앨 고어, 존 케리,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의 모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토론 코치로 활동했다. 그가 과거에 후보들의 토론 준비를 위해 정리한 ‘21가지 법칙’은 지금도 민주당 내에서 교과서처럼 쓰인다. ‘펀치보다 카운터펀치가 더 낫다’ ‘초반 30분에 승부를 내라’ ‘옳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는 차라리 말하지 말라’ 같은 것들이다.

오바마 행정부 1기 부통령 비서실장, 2기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2014년 에볼라 대응팀의 수장인 ‘차르’ 직을 맡으며 대중에 존재감을 알렸다. 러시아 황제를 일컫는 차르는 미국 정부에서 특정 이슈에 관한 최고 조정관을 뜻하는 비공식적인 직함으로, 상원의 의결 없이 임명이 가능한 직책이다.

환경보호청(EPA) 청장 : 마이클 리건 노스캐롤라이나주 환경품질부 장관

리건은 노스캐롤라이나주 골즈보로 출신으로, 노스캐롤라이나 A&T주립대에서 지구환경과학을 공부하고 조지워싱턴대에서 행정학 석사를 땄다. 이후 클린턴 정부,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인 1998년부터 2008년까지 EPA에서 규제 관리직을 맡았다.

2017년 노스캐롤라이나주 환경품질부 장관에 임명된 뒤, 산업화로 인한 저소득층의 피해 복구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듀크에너지와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탄제 제거 작업에 합의하고, 화학업체인 케무어스에 유해화학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AS)의 케이프피어강 방류를 금지시킨 일이 대표적이다. 리건이 취임하게 되면 최초의 흑인 청장이 탄생한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 : 니라 탠든 미국진보센터(CAP) 의장

탠든은 1970년 매사추세츠주 베드포드에서 태어났다. 인도 이민자 출신인 부모 밑에서 자라 캘리포니아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나왔다. 클린턴 정부에서 백악관 국내정책부보좌관으로 일하며 에너지·헬스케어 등 광범위한 분야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오바마 정부에서도 그는 정책실장으로서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탠든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복심(腹心)으로도 잘 알려졌다. 1999년 상원 선거 때부터 클린턴을 도왔으며, 2008년 대선 당시에는 클린턴 선거진영 정책고문으로 낙점되기도 했다. 클린턴이 2016년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면 백악관 고위직을 맡았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최근에는 CAP 의장을 맡아 활동했다.

무역대표부(USTR) 대표 : 캐서린 타이 하원 세입위원회 무역정책 법률 고문

타이는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나 워싱턴DC에서 자랐다. ‘워싱턴 사립학교의 하버드’로 불리는 시드웰프렌즈 고교를 나와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 이후 예일-차이나 교류 프로그램으로 중국 광둥성 대학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USTR 일반자문 부문에서 일했다. 2011년부터는 중국무역제재 팀장을 맡았다. 2014년 하원 세입위원회에서 무역자문을 역임하다 2017년 부문장으로 임명됐다.

USTR 대표로 확정되면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대표가 된다. 일각에서는 그의 지명이 현재 미·중 무역 대치 상황을 끝내고 다자간 무역 협상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신호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 :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前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

토머스 그린필드는 1952년 루이지애나주 베이커에서 태어나 루이지애나주립대와 위스콘신대에서 각각 학사와 석사를 땄다. 1982년 외교관이 되기 전까지 벅넬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다. 이후 유엔미국대표부에서 일하며 라이베리아, 스위스, 파키스탄, 케냐, 감비아, 나이지리아, 자메이카 등을 오갔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를 맡았다.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던 당시 미국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정책을 총괄했다. 국무부를 떠난 뒤에는 최근까지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ASG)에서 고문으로 있었다.

국가정보국(DNI) 국장 : 애브릴 헤인스 前 중앙정보국(CIA) 부국장

헤인스는 1969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어머니를 잃고 일본 도쿄로 건너가 유도를 배워 갈색띠(1급)을 따기도 했다. 1년 뒤 귀국해서는 시카고대에서 이론물리학을 공부하며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존스홉킨스대 박사 과정을 밟다가 1992년 결혼을 이유로 중퇴하고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어머니의 이름을 딴 북카페를 열었다.

2001년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나오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외교 안보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헤이그 국제사법회의(HCCH)에서 법무관으로 일을 시작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무부 법률 고문실에서 근무했다. 2007년에는 상원 외교위원회의 부고문으로 일하며 당시 위원장이었던 바이든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2010년 오바마 행정부에 합류해 국가안보위원회 법률고문으로 있다가 2013년 여성 최초로 CIA 부국장으로 발탁됐다. CIA 부국장 시절에는 비밀리에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국가안보 수석부보좌관을 끝으로 2017년 백악관을 떠난 후에는 컬럼비아대에서 여러 직책을 맡으며 활동했다. 이밖에 차기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이 공동 창립한 외교전략 컨설팅 회사 ‘웨스트이그젝 어드바이저스’에 몸담기도 했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 세실리아 라우스 프린스턴대 공공·국제관계대학장

노동경제학자인 라우스는 클린턴 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 오바마 정부에서 CEA 위원으로 활약했던 민주당 내 대표적인 ‘경제 브레인’이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로 현재 프린스턴대 공공국제문제대학원 원장을 맡고 있다. 인준을 받으면 첫 흑인 CEA 위원장이 된다.

중소기업청장 : 이사벨 거즈먼 前 중소기업청 부비서실장

거즈먼은 오바마 정부 당시 중소기업청 부비서실장과 선임 고문을 역임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주 기업·경제개발부 산하 중소기업 담당 국장으로 있다. 이른바 ‘와튼 스쿨’로 불리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도 동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에 입문하기 전 사업을 한 경험이 있으며,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은 LA 프로아메리카 은행의 고문을 지냈다.

◇ 백악관 요직

백악관 국내정책위원회(DPC) 위원장 : 수전 라이스 前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라이스는 1993년 클린턴 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부터는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를 역임하며 사상 최연소 지역 차관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의 나이 32세 때 일이다.

이후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활동하다가 2008년 오바마 대선진영에서 외교정책 보좌관을 맡으며 미국 유엔 주재 대사까지 올랐다. 한때 국무장관 후보로 낙점되기도 했으나 2012년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피습 사건 처리가 미흡했다는 이유로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국무장관 후보에서 물러난 뒤에는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1964년 워싱턴DC에서 태어나 스탠포드대에서 학사, 옥스포드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까지는 경영컨설팅 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 제이크 설리번 前 부통령 안보보좌관

설리번은 1976년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태어나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자랐다. 예일대와 옥스퍼드대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은 뒤 예일대로 돌아와 로스쿨을 졸업했다. 로스쿨을 졸업한 뒤에는 제2차 연방순회항소법원과 연방대법원에서 서기로 일했다. 이후 미니애폴리스 로펌 페그래앤드밴슨을 거쳐 세인트토마스대 법대에서 겸임교수로 근무했다.

정계에 발을 들인 건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의 선임고문으로 임명되면서부터다. 2009년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에 오르며 백악관에 입성한 뒤 대통령 부보좌관,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두루 지내며 미국의 이란, 리비아, 시리아, 미얀마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인준을 통과하면 43세 나이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부 이래 가장 젊은 국가안보보좌관이 된다.

백악관 선임고문 : 마이크 도닐런 바이든 선거진영 수석전략가

도닐런은 1981년부터 바이든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 오바마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분야에서 중용될 가능성이 있는 톰 도닐런과 형제다. 로드아일랜드주 출신으로, 조지타운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로스쿨을 졸업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해 20명에 달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당선을 이끌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지난 11·3 대선에서는 바이든 선거진영의 수석전략가로 활동하며 특이하게 정책이나 이념이 아닌 후보의 성격과 가치를 공략한 캠페인을 설계했다는 평을 받는다.

백악관 대변인 : 젠 사키 바이든 인수위 선임고문

사키는 1978년 코네티컷주 스탬포드에서 태어나 윌리엄앤메리 컬리지에서 학사를 땄다. 2001년 아이오와주에서 톰 하킨의 상원의원 재선, 톰 빌색의 주지사 재선을 도우며 정계에 입문했다. 2004년 대선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민주당 유력 정치인 조지프 크롤리 하원의원의 공보실장을 역임했다.

2008년 오바마 정부 출범과 함께 백악관 부대변인으로 근무하다 이듬해 공보부국장으로 승진했다. 2011년 공직을 떠나 PR회사 글로벌스트래티지그룹(GSG)의 수석부사장을 지낸 뒤 2012년 오바마 재선 진영에 선임고문으로 복귀했다. 2013년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의 대변인을 맡다가 2015년부터 오바마 임기 말까지 공보국장으로 일했다.

2017년 CNN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바이든 당선 후 인수위에 합류했다. 인수위 합류 전에는 워싱턴 싱크탱크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전략 담당 부사장을 지냈다.

기후변화 특사 : 존 케리 前 국무장관

케리는 2004년 대선에 출마했고, 오바마 정부에서 마지막 국무장관(2013~2017년)을 지낸 미 정계의 거물이다. 국무장관 전엔 상원 외교위원장을 4년간 맡았다. 바이든은 케리의 특사 지명을 장관급 명단과 함께 발표해 그가 향후 대외 정책 전반에 조언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1943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난 그는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미 해군에 자원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은성훈장, 동성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으나 해군대위로 전역 후 반전운동에 뛰어들었다.

1973년 매사추세츠주 제5선거구 하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1976년 보스턴칼리지 로스쿨을 졸업했다. 이듬해 매사추세츠주 미들섹스 카운티 지방검사로 활동하다 1982년 부지사를 거쳐 1984년 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4선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클린턴 정부가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픽=송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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