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美 다자주의 복원과 韓 경제 손익계산서

이슬기 기자 2021. 1. 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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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질서 주도" 바이든표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 제품 구매하고 자국 기업에 전폭적 지원
韓 주력 분야서 경쟁 치열, 美 기업 보호 강화
中 견제 속 '통상=외교전략' 동맹 압박할 듯
무역 협정 체결 등 韓 정부가 '대원칙' 세워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5일(현지시각) 델라웨어주(州) 월밍턴에 있는 인수위원회 본부에서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기 전 생각에 잠겨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는 졌지만 트럼프주의(Trumpism)는 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2020년 대선을 분석한 기사에서 이같이 평가했다. 조 바이든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보여준 미국 우선주의는 경제 정책과 통상 등 전 분야에서 여전히 미국을 관통하는 중심 추가 될 거란 뜻이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바이든의 취임 일성에는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도 되찾으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바이드노믹스의 핵심은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 제품 구매)'이다. 임기 4년간 연방정부가 자국 제품을 사는 데 4000억달러(약 441조원)를 투입하고, 미국의 첨단기술과 연구개발에 3000억달러를 쓰기로 했다. 그 외 △정부 조달 시 미국 선박으로 수송 △미국 내 생산시설 개조·확대시 세제 혜택 △해외 생산 제품의 미국 내 판매시 과세 방침도 천명했다.

바이든은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후 처음으로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자동차부터 비축품까지 미국 제품을 살 것"이라며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기업에게는 정부 계약을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미래는 미국에서 만들어지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보호무역주의는 집권세력이 된 민주당의 전통적인 정책 기조다.

◇'돈 풀기' 효과 기대감에도 韓 기업 수혜는 '미지수'

물론 바이든의 다자주의와 경기부양책은 수출 주도형인 한국 경제에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임기 4년 간 청정에너지·기후변화대응 인프라에 2조달러를 쓰고 1조9000억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추진하자는 제안에 국내 주식 시장의 기대감도 커졌다. 당장 통상 분야의 불확실성부터 크게 줄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교역량 증가로 한국의 수출과 경제성장률이 각각 최대 2.2%포인트, 0.4%포인트 오를 거라고 내다봤다.

반면 미국 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은 한국 기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태양광 셀이나 배터리 등 한국 기업의 주력 분야에서 경쟁이 강화되고,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분야는 바이든 행정부가 검토 중인 '탄소국경조정세'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철강 관세를 지속해달라는 미 철강업계의 집단행동과 잇단 보호무역 요구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왼쪽부터)/연합뉴스

◇對中 견제 강화 속 '통상의 정치화' 우려 확대

바이든의 대외 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원칙은 '대중(對中) 견제'다. 한국은 트럼프 시대보다 한층 복잡한 전략을 고심하게 됐다. 미·중 갈등이 상시화하고 이것이 통상 문제로 이어져 한국경제에 지속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한국의 양대 수출국이다.

산업연구원(KIET)은 지난해 11월 발간한 <바이든 정부의 출범과 대미 통상환경> 보고서에서 통상 현안이 정치·외교 현안의 일부 혹은 하위 현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기업 경영인 출신인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50년 경력의 직업정치인이다. 바이든의 이러한 경력이 국제 통상을 외교전략의 일환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문종철 KIET 연구위원은 "6선 의원에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만 세 번을 지낸 바이든은 동맹과의 결속을 요구할 때 정치적 시각에서 접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통상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달 중국계 캐서린 타이의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에 대해 "바이든 자신이 '외교통 직업정치인'임을 보여준 인선"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바이든은 대선 유세 기간에 "미국 안에서, 우리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위한 핵심적 투자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어떠한 새로운 무역협정도 체결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따라서 집권 초반에는 중국 견제를 위한 신규 무역 협상이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 TPP) 재가입을 통한 미중 대결 구도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문 연구위원은 말했다.

◇"외교 앞세워 경제적 압박...정부가 '대원칙' 세워야"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대중 무역은 물론 각국과의 통상 시 외교 사안을 한층 민감하게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각국에 대한 신뢰도를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편의 제공'을 무기로 한국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시대의 미중 간 일대일 구도를 벗어나 동맹과 연합전선 구축을 통해 '편 가르기'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재선·전남 나주화순)은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우리 기업들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국익의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견지해야 할 대원칙을 분명히 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식 보복 관세보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노동, 인권, 환경 문제 등을 통상과 연계해 국제사회의 동의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은 미중 간 양자택일을 요구받을 수 있지만, 원칙을 정해 정면으로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또 바이오헬스 등 성장세가 빠른 신산업 부문의 R&D(연구개발)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는 것이 최선의 대비책이라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는 미국발(發) '글로벌 질서 재건'이 원론적 구호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글로벌 질서를 재건한다는 선언을 하고 있지만, WTO와의 관계 회복이나 무역 체제 복원 등은 미국에게 결코 절박한 이슈가 아니다"라며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자국 이익 극대화이다. 우리는 여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18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 TPP) 회의에 참가한 각국 대표자들./EPA 연합뉴스

◇"무역 협정은 고도의 전략 戰...휘말리지 않는 게 관건"

미국은 CP TPP 가입 또는 '바이든표 TPP' 신규 추진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가입한 한국으로서는 CP TPP로 11개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는 셈이다. 이로써 △안정적 시장을 확보하고 △외교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반면 회원국 중 기존 FTA 미체결 국가는 일본과 멕시코뿐이라는 점에서 과도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재선·서울 서대문을)은 "한국이 미중 간 '위치 선정'에 앞서 최대한 전략 경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시기를 늦춰서라도 CP TPP 가입의 실익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미중 전략 경쟁의 고도화를 우려해 선제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국의 입장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칫 무역수지 흑자폭만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는 것이다.

김 의원은 "그간 일본에 대한 위생검역 조치로 불허했던 사과와 배 수입도 허용하고,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도 요구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이 강제징용배상 철회를 가입허용 조건으로 내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정부의 CP TPP 재가입에 대한 방침을 살펴가면서 보조를 맞춰 가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안덕근 교수도 "미국이 대중 견제를 위해 어떤 형태로든 바이든표 TPP를 새로 추진할 것으로 본다"며 "CP TPP 재가입 보다는 높은 수준의 환경보호나 노동인권 관련 조항을 넣는 등 규정을 확대·강화할 것이며, 한국과 일본·영국·싱가포르 등의 참여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발표한 '2021 신년사'에서 "CP TPP 가입도 적극 검토하겠다"며 "RCEP, 한-인도네시아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에 이어 필리핀,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과의 FTA에 속도를 높여 신남방, 신북방 국가들과 교류·협력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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