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콘셉트 정책'으론 올해 파고 못 넘는다 / 김경락

김경락 2021. 1. 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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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김경락

산업팀장

새해 전후 인상 깊은 뉴스 두개가 있다. 우선 지난해 12월 말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의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인수 거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 결정을 꼽는다. 두번째는 이달 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위해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의 반대 결정 소식이다.

공정위 뉴스는 최종 결정에 이른 과정에 눈길이 갔다. 1년 동안 충분한 자료 조사에다 사실상 처음 이뤄진 치밀한 경제 분석을 토대로 한 결정이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뛰어난 경제학자를 영입해 경제분석과를 강화하며 경제 분석에 공을 들였다. 풍부한 준비 과정과 논거 덕택에 ‘정부(혹은 규제)가 혁신을 발목 잡는다’ 식의 상투적 반발은 확산되지 않았다. ‘타다’에 대해 정부·정치권이 춤추는 여론에 휩쓸리며 우왕좌왕하고 해당 업체는 혁신의 전도사인 양 큰소리치던 게 불과 2년 전이었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을 보며 떼쓰기 혁신이 아닌 ‘질서 있는 혁신’도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국민연금의 판단은 대세에 영향은 주지 않았던 터라 주요 매체에서 크게 다뤄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의미는 깊다.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합병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보이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중심으로 청와대와 금융당국, 한진 총수 일가가 한 몸이 되어 추진하는 ‘국가적 이슈’로 포장돼 있다. 국민연금이 소수주주로서 제 목소리를 낸 데 박수를 보낸다. 시장에는 ‘선악’을 넘어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그 목소리를 공적 연금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국민연금이 청와대와 삼성에 휘둘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게 드러난 이후 수년에 걸친 인적 변화와 더불어 꼼꼼한 의결권 행사 원칙 수립, 수탁자 위원 간 토론 문화가 다져졌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연금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와 같은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은 까닭이다.

세상일은 이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외려 콘셉트만 있고 내용은 부실해 논란만 일다가 흐지부지되거나 부작용만 낳는 사례도 적잖다. 새해에도 이런 경우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불쑥 이익공유제를 꺼내 들었다. 콘셉트만큼은 분명했다. ‘코로나19로 특수를 누린 기업이 그렇지 못한 쪽에 이익을 나눠주자.’ 케이(K)자 회복이란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양극화는 더 심해졌으니 이 콘셉트만큼은 토 달기 어렵다. 하지만 이 대표 발언에 대한 고위 당직자들의 ‘추가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특수를 본 기업에 쿠팡과 마켓컬리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코로나19로 ‘매출’이 많이 늘어난 것은 맞지만 여전히 적자 늪에 빠져 있지 않은가. 나눠줄 이익이 없는데 어떻게 이익 공유의 주체가 되는지 의아했다. 이 대표나 그의 말을 전한 여당 고위 당직자들은 두 회사의 재무제표를 보지 않았음이, 또 이를 본 사람들의 의견은 듣지 않았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콘셉트를 구체화할 치밀한 분석과 검토가 없었기에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였다. 콘셉트와 내용의 부조화는 정부와 여당의 핵심 자산이어야 할 신뢰를 갉아먹는다.

거시경제 상황이 불안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돈을 거둬들이는 작업(테이퍼링)에 대한 언급을 부쩍 늘렸다. 국내외 시장 금리가 고개를 슬금슬금 들고 있다. 위기 국면에 늘려놓은 부채 부담과 금융 리스크는 확대될 것이다. 대통령의 주가지수 3천 돌파 언급과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펀드 재가입 사실 공개에 담긴 메시지가 신용 융자 규모가 20조원이 넘는 ‘빚투 시대’와 어울리는지 정부와 청와대는 자문해봐야 한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콘셉트가 아닌 철저한 준비와 분석으로 무장한 정부와 여당의 유능함이 절실하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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