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건조기 '펑' 소리에 소비자들 가슴은 '쿵쾅'

오종탁 기자 2021. 1. 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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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위니아 등 제품 고장 사례 잇달아.. 늘어난 수요만큼 궁금증·의구심도 커져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갑자기 '펑' 하더니 뿌연 연기와 탄내로 뒤덮였어요." 

최근 의류건조기 시장이 커지면서 고장으로 피해를 봤다는 사례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건조기가 갑자기 소음·연기·냄새를 내며 멈춰섰다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신(新)가전(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발맞춰 탄생한 가전)을 넘어 생활필수품으로 부상 중인 건조기는 과연 괜찮은 것일까. 시장에서는 '판매량 급증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오해와 불만도 많아지는 것'이라는 의견과 '미비한 점이 분명히 있는 만큼 안전성 강화 등 제품 개선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A씨는 1월3일 식사 준비를 하다가 '펑' 하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들려온 다용도실을 열어보니 연기가 자욱했고 탄내도 났다. 원인은 세탁된 의류를 말리고 있던 건조기였다. 전원을 차단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한 뒤에야 상황은 일단락됐다. 

소비자들이 서울의 한 가전양판점에서 다양한 의류건조기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건조기 계속 사용해도 괜찮을까" 조마조마 

다음 날 A씨 집을 찾은 LG전자의 수리기사는 건조기를 살펴보고 내부의 인쇄회로기판(PCB)을 무상으로 교체해 줬다. 불량품인 PCB가 타버려 문제가 벌어졌다는 진단에 따른 조치였다. 문제 재발 혹은 화재로 번질 가능성을 묻는 A씨에게 수리기사는 "혹여 PCB 불량이 재현될 수 있을지라도 화재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고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A씨는 수리기사에게 건조기를 공장으로 가져가 점검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장 점검 결과 추가적인 불량이나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A씨는 돌아온 건조기를 쉽사리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통해 "수리기사가 '문제없다'며 켜놓고 간 건조기를 (무서워서) 얼른 끄고 아직 못 써본 채 빨래는 햇볕에 말리는 중"이라면서 "인명피해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건조기와는 작별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에 사는 B씨도 지난해 9월 비슷한 일을 겪었다. B씨는 건조기의 건조 기능이 시원찮아 콜센터에 해결책을 문의했다. 상담원의 안내대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다가 고장이 발생했다. '콘덴서 케어'에 이어 '통살균' 버튼을 누르고 잠시 외출한 사이 건조기 속 PCB가 탔고, 연기와 냄새를 뿜어냈다. 제조사인 LG전자 측은 PCB를 무상으로 바꿔주면서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B씨는 여전히 불안했다. 그는 "여태껏 아무 생각 없이 건조기를 밤에 잘 때 가동시키거나 돌려놓고 외출하곤 했는데, 이제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마트가 2019년 8월 1~2인 가구를 겨냥해 출시한 3kg 소용량 건조기 ⓒ연합뉴스

회로기판 교체에도 맘 못 놓는 소비자들 

인천에 거주하는 C씨가 사용하던 삼성전자 건조기에서도 지난해 5월 뭔가 터지는 소음이 들렸다. 먼지 때문인가 싶어 필터 청소를 하고 다시 돌렸는데 또 한 번 터지는 소리가 났다고 C씨는 전했다. C씨는 "당장 옷들을 말려야 해서 잠시 후 다시 가동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건조가 종료되지 않더라"며 "결국 수동으로 끄고 보니 옷은 하나도 안 말랐고 내부에 물이 고여 있었다"고 회상했다. 방문한 삼성전자 수리기사는 PCB를 무상으로 교체해 줬다. 

강원도 원주의 D씨는 2018년 12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건조기가 돌아가던 와중에 '펑' 소리와 타는 냄새가 났다"면서 고장 난 위니아전자 건조기 영상을 게재하기도 했다. 영상 속 건조기는 건조 버튼을 눌러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 밖에 인터넷상에선 건조기 PCB 불량으로 추정되는 몇몇 고장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국내 주요 가전업체들이 판매하는 의류건조기의 PCB 불량 사례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PCB는 전기적 부품들이 납땜 된 얇은 판이다. 가전 등 전자제품 대부분에 이 PCB가 들어가는데, PCB 불량으로 건조기가 고장 나는 사례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중이다. 

소비자가 "'펑' 소리와 타는 냄새가 난 후 건조기가 작동하지 않았다"며 인터넷에 올린 영상ⓒ인터넷 커뮤니티
PCB가 타버려 건조기 일부가 그을린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제조사 "단순 부품 불량, 화재·폭발과는 무관" 

실제로 국내 주요 가전업체의 A/S 데이터베이스엔 가전제품 PCB 불량에 대한 조치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 측은 삼성전자서비스 홈페이지의 '자가진단' 메뉴에서 드럼세탁기가 소음을 내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고객 문의에 "PCB 등의 점검이 필요할 수 있다"며 "전기를 저장했다 보내주는 부품(PCB 콘덴서)의 이상으로 모델에 따라 '펑' 소리와 함께 동작하지 않는 경우도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LG전자 측 역시 "해당 사례를 겪은 고객 입장에선 당연히 놀라고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다만 건조기 등 가전제품의 경우 전기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자체적으로 전류나 발화 가능성을 차단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주변으로 파편이 튄다거나 화재가 난다거나 할 위험은 없다"면서 "간혹 발생하는 부품 불량과 (소음·연기·냄새 등) 부가 문제는 정상 PCB로 교체하면 재발할 가능성이 거의 제로(0)다. 향후 PCB 불량 최소화, 철저한 A/S, 고객 불안감 해소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제조사 측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만한 위치가 아니어서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대형 가전업체 수리기사는 "가전제품 내 PCB 콘덴서가 터지는 현상은 수리기사 입장에서 놀라운 고장은 아니다"며 "습기나 과전류, 정전 등으로 인해 콘덴서가 터질 수 있고, 특히 세탁기는 이런 고장이 잦다"고 밝혔다. '혹시 건조기가 폭발할 수 있느냐'는 소비자 질의에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도 "건조기 설계 구조상 폭발할 위험은 없다"고 답했다.   

생활가전의 숙명, 성장동력이자 잠재 리스크 

과거에 가전제품 판매는 유독 유행을 많이 탔다. 혼수철·이사철에는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 주류 제품 판매가, 여름철 기온이 높을 때는 에어컨 판매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는 공기청정기 판매가 급증하는 식이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이후에는 이 같은 공식이 뒤집혔다. 전통 가전은 물론 의류건조기, 의류관리기, 식기세척기 등 신가전도 동시에 잘 팔리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만 해도 글로벌 경기 위축, 생산 차질 등으로 가전 판매가 미진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예상을 깨트린 건 소비자 심리였다. 잠시 주춤하던 소비는 2020년 3분기 들어 비대면(언택트)·집콕 수요와 펜트업(pent up·억눌린) 수요에 힘입어 반전을 이뤄냈다. 외부 활동이나 해외여행 등이 힘들어지자 '집에서라도 최대한 편하고 즐겁게 지내자'는 보상 소비 심리가 작용했다. 감염·위생에 대한 우려 속 살균 기능이 강화된 가전제품도 주목받는 중이다. 가전양판점인 전자랜드가 2020년 가전제품 매출을 2019년과 비교한 결과 식기세척기와 건조기 판매량이 각각 150.0%, 33.0% 급증했다. 

가전 부문의 깜짝 선전에 국내 양대 전자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 실적은 훨훨 날았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결 기준 잠정 영업이익은 35조95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9.5% 증가했다. 매출은 236조26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늘어났다. 같은 기간 LG전자는 매출 63조2638억원, 영업이익 3조1918억원(전년 대비 각각 1.5%, 31.0% 증가)으로 두 부문 모두 창사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LG전자 생활가전은 미국의 월풀을 제치고 지난해 실적에서 글로벌 1위 달성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렇게 소비자의 영향력이 지대한 만큼 크고 작은 소비자 이슈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생활가전 시장이다. 지난해 12월 위니아딤채는 2005년 9월 이전 생산된 김치냉장고에 대해 전량 제품 수거(리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해당 김치냉장고 내의 특정 부품에서 불이 났다는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자체 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돼서다. 리콜 대상 딤채 김치냉장고는 총 278만 대에 달했다. 위니아딤채는 제품 수거·교체와 더불어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막대한 비용을 써야 했다. 

LG전자도 2019년 12월 악취와 먼지 낌 현상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히트펌프식 의류건조기를 전부 무상 리콜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그해 7월 LG전자 의류건조기 소비자 247명은 "광고와 달리 자동세척 기능을 통한 콘덴서 세척이 원활하지 않고 내부 바닥에 고인 잔류 응축수 때문에 악취와 곰팡이가 생긴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집단분쟁조정을 한국소비자원에 신청했다. 소비자원은 실사를 통해 LG전자 건조기 일부에서 먼지 쌓임 등을 확인하고 한 달여 뒤 시정 권고를 내렸다. 

권고에 따라 LG전자는 2016년 4월부터 판매된 트롬 듀얼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 전량을 대상으로 기존 부품을 개선된 부품으로 교체하는 무상 수리를 실시했다. 일단 신청 고객을 대상으로 하다가 신청하지 않은 고객들에게까지 집적 연락해 무상 서비스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LG전자 측은 "건조기 결함이나 위해성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자발적 리콜을 실시해 고객에 대해 진정성 있게 책임을 끝까지 다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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