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제로' 文정부 탄소세 신설·경유세 인상 검토..철강·화물업계 직격탄
수조원대 기금 재원 마련 관건, 탄소세 신설 검토
철강·석유·車 직격탄, 경유세 인상시 소비자부담도
학계 "기후변화 대응하되 정책 과속하지 말아야"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정부가 탄소중립, 기후변화 대응 피해 보전 등에 사용하는 기후대응기금 규모를 수조원대로 키우기로 하면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금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최대 난제다.
정부가 수조원대 기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탄소세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탄소세 신설시 철강·정유업계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산업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경유세를 인상하면 SUV 등 디젤차량 운전자들과 화물·운송업계 부담이 커진다. 기금의 운영 주체와 사용처도 논쟁거리다.
19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1년도 업무계획에 따르면 탄소 중립 친화적 제도를 설계하기 위해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하고 탄소 가격체계를 검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안’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기금을 운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수조원대 기금 마련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후대응기금의 재원 조달 방안으로는 탄소세 도입이 유력하다. 기재부는 올해 연말까지 세제 연구용역을 통해 탄소세 등 탄소 가격체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전제로 탄소세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법안이 나오기도 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7일 온실가스 1t당 8만원의 탄소세를 과세해 확보한 재원으로 전국민에게 매달 10만원을 지급하자는 내용의 ‘기본소득 탄소세법’을 발의했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용 의원 법안에 대해 “기본소득탄소세나 탄소기본소득은 복합적 정책 효과를 가지고 있다”며 환영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탄소세 도입이 효과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에너지원의 탄소함유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탄소세 도입 시 에너지 세제를 단순하게 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에너지 세제는 개별소비세, 교통·에너지·환경세, 자동차세, 지역자원시설세 등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 오염 배출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 적용이 미흡해 교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도 기후대응기금 조성과 함께 탄소 가격 부과 수단을 검토해나갈 예정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7일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브리핑에서 “탄소세는 종합적으로 검토해 방침이 결정될 것”이라며 “세제 전반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탄소세를 도입할 경우 증세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전반적으로 세제 체계를 검토할 예정이지만 탄소 배출이 많은 업종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지금도 기업들은 경유세 등의 환경세를 부담하고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탄소 배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에 탄소세 도입 시 세금 부담이 늘거나 이중과세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올해 경제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탄소 경제를 지목하며 기업 활동에 직격탄이 될 환경 규제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시행할 예정인 탄소국경세에 따른 추가 부담도 상당하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기후변화 규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이들 3개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철강·석유·자동차 등 주요 업종은 연간 6000억원 가량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비용은 2030년 1조87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이같은 세 부담이 소비자 비용으로 전가될 우려도 있다.
수조원대에 달할 기후대응기금의 운용 주체에 대해서도 ‘기 싸움’이 예상된다. 기금 재원을 충당하는 민간이 운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운용한다고 해도 기재부나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등 부처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주무부처를 어디로 정할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과속하지 말고 면밀한 준비를 할 것을 주문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장)는 “지금은 코로나19로 위축된 가계와 기업에 세 부담을 덜어주는 등 경기활력 대책이 필요한 시기”라며 “기후변화 대응은 불가피하지만, 무리하게 증세를 하면 조세저항만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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