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전스포츠오늘] '축구황제' 펠레가 골키퍼로 활약했다

박혜빈 2021. 1. 19. 12:0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57년 전 오늘, '축구황제' 펠레가 브라질 컵 준결승전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후반 41분, 산토스의 골키퍼 지우마르가 주심에게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하자, 펠레가 골기퍼를 맡게 된 것이다.

1964년 1월 19일 브라질 컵 경기를 포함해 펠레가 산투스의 골키퍼로 뛴 것은 총 네 차례다.

펠레는 실제로 골키퍼 교육을 받았었다고 전해진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64년 1월 19일 해트트릭과 세이브 2개를 동시에 기록한 펠레

[윈터뉴스 박혜빈 기자] 57년 전 오늘, '축구황제' 펠레가 브라질 컵 준결승전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펠레는 그날 이미 세 골을 터트린 상태였다. 상대는 남부지역의 명문 클럽 그레미우였고, 펠레가 속한 산투스 FC(이하 산투스)는 4:3 근소한 차이로 그레미우를 앞서고 있었다. 

후반 41분, 산토스의 골키퍼 지우마르가 주심에게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하자, 펠레가 골기퍼를 맡게 된 것이다.

1964년 1월 골키퍼를 맡은 펠레, 사진=펠레 박물관

선수 교체가 없었던 당시, 주전으로 나왔던 골키퍼가 부상이나 퇴장을 당하면 다른 골키퍼를 교체 투입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필드 플레이어 한 명을 골키퍼로 투입시키곤 했는데, 산토스는 경우 주로 펠레를 투입시켰다. 

그레미우는 펠레가 골문을 지키는 틈을 타 맹공을 펼쳤다. 그러나 펠레는 결정적인 세이브를 2개나 기록하며, 산투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해트 트랙과 세이브 2개를 동시에 기록한 것이다. 

그렇게 결승전에 오른 산투스는 북동부 지역의 명문 EC 바이아를 꺾고 네 번째로 브라질 컵을 거머쥔다. 

사진=연합뉴스

1964년 1월 19일 브라질 컵 경기를 포함해 펠레가 산투스의 골키퍼로 뛴 것은 총 네 차례다. 1959년 11월 4일 상파울루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챔피언십 대회 코메르시아우 FC와의 경기, 1969년 11월 14일 보타포구 PB와의 리그 경기, 1973년 6월 19일 미국 볼티모어 베이스와 친선 경기 등이다. 

펠레는 실제로 골키퍼 교육을 받았었다고 전해진다. 산토스 팀에서 2군 골키퍼 훈련을 받았고,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예비 골키퍼로 훈련을 받았다. 펠레가 공격수 다음으로 제일 잘하는 포지션이 골키퍼였다. 

한편, 1969년 보타포구 PB와 전에서 펠레는 통산 999골을 기록한 상태였다. 페널티킥으로 1000번째 골을 넣을 기회가 있었는데 골키퍼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펠레가 골키퍼를 맡게 되었다. 이 때문에 펠레의 1000번째 골이 늦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진=연합뉴스

펠레는 축구선수 치고 작은 키를 가졌지만 압도적인 점프력으로 이를 무마시키던 선수였다. 일단 점프 높이부터 남달랐다. 공중에 뜬 후 특유의 탄력을 이용해 정확하고 강력한 헤딩골을 만들어냈다. 

펠레의 점프력의 비결은 펠레의 어린 시절 스승, 바우데마르 지브리투의 훈련법에서 찾을 수 있다. 지브리투는 펠레가 오른발, 왼발, 양발 점프를 이용해 어떤 상황에서도 탄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이는 훗날 펠레의 강력한 무기가 되어 그가 공중에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보여주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펠레가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선수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던 것은 물론, 골키퍼로서도 맹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라 추측해본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MHN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