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속도의 시대'인데, '상실의 시대'에 갇힌 삼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뒤 법정구속됐다. 지난 2017년 2월 구속기소로 1년여간 수감 생활을 하다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약 3년 만이다.
이 부회장의 남은 형기는 1년 6개월. 그룹 총수의 부재를 맞은 삼성은 그 어느 때보다 경영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은 곧바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구심점 역할인 이 부회장의 존재가 당분간 없다는 점은 뼈 아프다.
최근 글로벌 산업계는 최고경영자(CEO) 내지는 오너의 결단력이 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 TSMC가 올해 30조원 가량의 설비투자를 감행하겠다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감한 투자로 2위 삼성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겠다는 것이다. 후발주자인 삼성으로서도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시점이나,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시계(示界)는 제로에 가깝다.
경제계는 앞으로 삼성이 헤쳐나가야 하는 수많은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이 부회장이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도 결과적으로는 큰 타격을 입은 모양새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인정받는데, 이 상실로 우리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이미 삼성의 경쟁자들은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에 대응해 삼성은 조만간 사업부별 위기 대응 프로세스를 가동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자가 없는 상태에서 과감한 투자와 신속한 의사 결정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 공동 이사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21세기 디지털 경제 시대를 가리켜 ‘속도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는 정보통신기술(ICT)의 급격한 발전과 확산이 거리와 시간, 위치의 제약을 없애고, 시장과 고객에 대한 각 기업의 대응 속도와 유연성이 주요 화두로 대두될 것이라고 봤다.
속도의 시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과 실행의 빠르기다. 이는 기업 성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 변화와 혁신의 속도가 빠른 ICT 분야는 더욱더 그렇다. 전략적인 의사결정과 실행 역량 확보, 경쟁자보다 빠른 제품 개발과 기술 혁신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이 속도의 시대를 가장 잘 타고 넘었다고 평가받는 기업인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특히 지난 19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우리 산업계의 일대 변화로 인식된다. 이 회장은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의 원천으로 ‘스피드(속도)’와 ‘기회선점’을 강조했고, 경쟁자보다 앞서 신제품 개발과 안정적 양산 체제로 시장을 선점해 나갔다. 삼성은 오너 결정 구조의 신속성을 회사 강점으로 활용해 왔으나, 이를 토대로 한 ‘삼성 시스템’도 구축해 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 전반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삼성의 ‘속도전’도 일대 도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 기업의 리더십 상실은 곧 기업의 위기로 연결되고, 삼성과 같이 국가 경제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기업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법부가 이런 상황까지 예측하고 선고를 내렸을 리는 만무하다. 법리는 경영 상황과 미래 위협까지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리더십 부재가 향후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속도의 시대’를 지나 온 삼성이 마주할 ‘상실의 시대’에도 삼성은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이 상실감이 결코 오래 유지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1년 6개월 뒤로 미뤄진 ‘뉴 삼성’을 위해서도 옳은 길이다. 물은 엎질러졌고. 쌀은 쏟아졌다. 위기를 극복해 낼 대안으로 시스템이 꼽힌다. 곧 계열사 중심의 긴급 사장단 회의가 소집된다고 한다. 리더십의 일시적인 부재를 해결할 긴밀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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