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이 '세대수 증가' 탓?..번지수 제대로 짚고 있나[부동산360]
전문가들 "인과관계 안 맞아, 정책 영향도 커"
'1인세대가 집값 올렸나' 시각은 제각각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작년 한 해 우리나라 인구 감소에도 무려 61만세대가 늘었다. 세대수가 급증하면서 공급물량이 부족해 가격 상승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안정화에 성공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이같이 진단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놓고 집값 급등의 원인을 정부 정책보다는 단순히 인구구조의 변화 탓으로 돌리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진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세대수가 증가한 근원적 원인이 바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1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주민등록 세대수는 2309만3108세대로, 전년보다 61만1642세대(2.7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만~40만세대 수준인 평년 증가량을 크게 웃돈다. 문 대통령의 언급대로 전체 인구가 5182만9023명으로 전년보다 2만838명(0.04%) 감소한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는 1인세대 증가 영향이 컸다. 지난해 늘어난 세대수에서 1인세대(57만4741세대)는 93.9%를 차지했다. 총 906만3362세대로 처음 900만세대를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전통적인 가족개념 변화에 따른 가구 분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령층의 황혼 이혼이나 사별, 비혼·만혼 등도 1인세대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 역시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세대수가 증가한 데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한몫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정책이 1세대 1주택을 우대하는 방향으로 설정됐기 때문에 ‘각자도생’하는 것이 절세나 주택 청약 등에서 유리하다고 말한다. 현재 1주택 상태인 부모가 같은 세대인 자녀 명의로 주택을 살 경우 기본 취득세율(1~3%)보다 높은 8%를 적용받는다. 규제지역에선 세대주만 1순위 청약자가 될 수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같은 세대로 묶이면 주택 취득·양도 시 중과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주민등록상 세대를 분리하는 작업이 가속화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양도세·보유세 등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증여가 활발해졌고, 이것이 세대수 증가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증여건수는 9만1866건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2019년 6만4390건과 비교하면 43% 증가했다.
이재국 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자녀의 결혼, 직장 이동 등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세대분리는 과거부터 계속 있었던 일”이라며 “이번 정부 들어 세대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면서 주요 정책에서도 세금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 원인을 세대수 증가로 지목한 것에 대해선 ‘면피성’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대수 증가로 인해 공급물량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애초 주택공급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물량을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한동안 얘기해오다가, 뒤늦게 신규 공급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초점은 1인세대가 집값을 올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느냐에 모아진다. 최근의 집값 상승세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다. 한국부동산원 기준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2017년 5월) 이후 지난해까지 전국 및 서울 아파트값은 각각 7.07%, 16.65% 올랐다.
우선 아파트값이 오른 데 1인세대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아파트 선호 현상은 날로 뚜렷해지고 있지만, 아직 아파트 시장의 주 고객층은 3·4인세대라는 점에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아파트에 ‘거주’하는 1인세대는 2015년 27.6%에서 2019년 31.3%로 늘어나지만, 여전히 다가구·단독주택(45.4%)의 비중이 높다. 3·4인세대인 경우 2019년 기준 아파트 거주 비중이 63.9%, 71.9%에 달한다.
아파트 거주 비중은 1인세대가 전체 세대(51.1%)의 약 0.6배 수준이나, 주택 이외의 곳에 거처하는 비중은 전체 세대(4.8%)의 2.1배에 달한다.
권대중 교수는 “1인세대가 아파트에 거주한다면 매매보다는 증여의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면서 “물론 여력이 돼서 산 사람도 있겠지만, 집값을 올릴 정도의 매수세였는지는 따져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우병탁 팀장은 “1인세대 증가가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면 이들이 선호하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등도 아파트에 준하는 수준으로 올라야 할 것”이라고 봤다.
반면 정부의 정책이 주택 구매를 서두르게 한 것은 분명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재국 교수는 “집값 상승에 따라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내 집 마련을 미리 해놔야 한다는 강박과 초조함이 생겼다”면서 “잠재적인 실수요층이 미리 시장에 들어서게 된 것”이라고 봤다.
진단이 잘못되면 해법 역시 어긋날 수 있다. 정부가 1인세대 증가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공급방안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의 지난해 11·19 전세대책에는 호텔 개조를 통한 공공임대 등 1인세대를 위한 주거대책도 담긴 바 있다. 당시 전세난이 3·4인세대 위주, 아파트 중심으로 나타났었다는 점에서 핵심을 잘못 짚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지난해 공급대책에서는 1·2인세대의 주거용 공간 마련을 위한 호텔·상가·사무실 개조 정책이 쏟아졌다”면서 “엉뚱한 곳에 공급이 과잉되면 결국 집값 문제 해결은 요원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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