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뚫고..산정상에 핀 순백의 눈꽃

글·사진(무주)=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입력 2021. 1. 19. 10:48 수정 2021. 1. 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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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 명소 '덕유산'
설천봉~향적봉 구간 '눈꽃 트레킹'
히말라야 맞먹는 화려한 설경 자랑
팔각정 쉼터 '상제루'도 장관 연출
구천동계곡 따라 33景 명소 감상도
설원 사이로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600m '눈꽃트레킹' 구간이 펼쳐진다. 정상을 지척에 두고도 마스크까지 딱딱하게 얼어붙는 맹추위에 향적봉 등반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다.
[서울경제]

전라북도에서도 무주, 진안, 장수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오지다. 세 지역의 앞 글자를 따서 '무진장'이라고 부르는데, 영남의 'BYC(봉화, 영양, 청송)'와 비견되는 호남 두메산골의 대명사다. '무진장'은 사전적으로 '다함이 없이 굉장히 많음'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무주는 강원도 평창과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을 벌였을 정도로 강원도 못지 않게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겨울 여행지로 무주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덕유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구상나무 한 그루가 새하얀 눈꽃을 피웠다.

무주에서도 한번 눈이 내렸다 하면 4월까지도 녹지 않는다는 설천면. 덕유산은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이맘때면 덕유산 설경은 절정에 달한다. 특히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600m 구간에 펼쳐지는 눈부신 설경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작은 히말라야'로 불릴 만큼 겨울 산행의 백미로 꼽힌다. 한겨울에도 가장 춥고,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다는 순백의 눈꽃과 상고대를 찾아 한파 경보가 내려진 지난 7일 덕유산을 찾았다.

출발은 덕유산 탐방 안내소가 아니라 무주리조트다. 리조트 자체가 덕유산 국립공원 안에 들어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구천동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해 백련사에서 향적봉에 올랐다가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지만, 단순히 눈 경치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역방향으로 올라가는 편이 좋다. 스키장에서 곤돌라를 타면 힘을 들이지 않고 단숨에 정상 인근까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덕유산 설천봉에 자리한 팔각정 쉼터 상제루는 추운 겨울이면 마치 얼음성처럼 하얀 상고대로 뒤덮여 장관을 연출한다.

높이로 치면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국내에서 4번째로 높은 덕유산 등반이 대중화된 것도 다 곤돌라 덕분이다. 곤돌라는 스키장에서 설천봉까지를 연결한다. 설원 위를 활강하는 스키어들을 내려다보면서 20분 가량 이동하면 어느새 해발 1,520m 설천봉에 다다라 있다. 곤돌라에서 내리자마자 눈 앞에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설원이 펼쳐진다. 수백 년 세월을 이겨온 주목은 가지마다 순백의 눈꽃을 피웠고, 팔각정 쉼터 상제루는 마치 얼음성처럼 하얀 상고대로 뒤덮여 장관을 연출한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흰 눈으로 뒤덮인 세상, 설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600m 구간에 펼쳐지는 눈부신 설경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작은 히말라야'로 불릴 만큼 겨울 산행의 백미로 꼽힌다.

여기까지 보고 덕유산 설경을 다 봤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덕유산 설경의 백미는 설천봉에서 향적봉(1,614m)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도 바로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통과하는 눈꽃 트레킹이다. 경사가 완만해 서둘러 가면 20분, 여유를 부려도 3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이니 초보 등산객이라도 욕심을 내볼 만하다. 다만 장갑과 귀마개 등 방한용품은 필수다. 한겨울 체감온도가 영하 30도 안팎인 덕유산 정상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덕유산은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주목 군락지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는 주목은 겨울이면 하얀 눈꽃을 피운다.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인 나무계단. 이 구간부터 고개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몰아친다.

상제루 옆 돌담을 따라 가면 눈을 뒤집어쓴 구상나무가 만들어낸 눈꽃터널로 연결된다. 평지에 가까운 눈꽃터널은 길이 험해서라기보다 주변 풍경을 감상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곳이다. 발목까지 푹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그림 같은 눈꽃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향적봉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구간인 계단 앞이다. 가파른 계단을 통과해 정상에 올라서자 사방으로 시원하게 뻗어나간 산 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맑은 날 향적봉에서는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조망할 수 있다.

맑은 날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서는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조망할 수 있다.

향적봉에서는 길이 세 갈래로 나뉘는데, 다시 설천봉으로 돌아가 곤돌라를 타거나 중봉 혹은 백련사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다. 중봉으로 가면 덕유평전과 오수자굴을 감상할 수 있지만 6시간이나 걸리는 강행군인데다, 경사가 가팔라 속도를 내기도 어렵다. 대신 곧바로 백련사 방향으로 가면 4시간 만에 구천동계곡을 따라 구천동탐방지원센터로 빠져나올 수 있다. 향적봉에서 백련사까지는 2.2㎞, 다시 백련사에서 구천동탐방지원센터까지는 4.4㎞로 총 6.6㎞ 거리다.

백련사는 덕유산 구천동계곡에 자리한 14개 사찰 중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구천동계곡 33경 가운데 32경으로 향적봉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잠시 들어가는 경유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역방향을 선택한 이유도 백련사 때문이었다. 사찰 자체에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등산객들의 발길이 일 년 내내 끊이지 않는 백련사는 등산객 입장에서는 불교 사찰이기 보다 잠시 쉬어가는 경유지다. 전국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사찰 가운데 설악산 백담사와 함께 가장 먼저 관람료를 폐지한 곳이기도 하다. 가람 배치도 등산객을 배려하듯 등산로를 중심으로 양분하고 있지만 대웅전 앞 돌계단을 올라 합장을 하고 경내를 통과하는 게 일반적이다.

백련사를 빠져나오면서 시멘트 포장길이 시작된다. 그 옆으로는 중봉과 백암봉 일대에서 발원한 구천동계곡이 흐른다. 나제통문에서 백련사까지 총 28㎞에 달하는 물길을 따라 선인들이 이름 붙인 33경(景)의 명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백련사부터 시작되는 하산길에 33경 향적봉부터 16경 인월담까지 절반 이상을 만나볼 수 있다. 무주군에서는 암행어사 박문수가 다녔던 이 길을 '어삿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25경부터 안심대까지 복원이 마무리된 상태로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백련사부터 구천동탐방지원센터까지는 내리막 구간이다. 내려가는 길에는 거친 숨을 내몰며 향적봉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하산하는 내내 역방향을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글·사진(무주)=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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