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시화기행>사랑도 문학도.. 그는 언제나 목말랐다

기자 2021. 1. 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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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Eyes of tiger, 30x50㎝, 종이에 먹과채색, 2021.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60) 파리의 소설가 발자크 (下)

어머니·여성에 대한 사랑의 결핍

작품활동 기폭제로 작용

철학·환상소설부터 서정시까지

다양한 장르 넘나들은 ‘대식가’

시인·극작가 등 문학적 탐식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유 있는 글은 못써

나의 칼은 나의 펜.

흔히들 오노레 드 발자크를 위대하다고 한다. 아리송해진다. 그 위대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실 발자크의 출발은 위대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일종의 결손가정 출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랑에 대한 결핍증을 앓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심지어 태어나기도 전부터 자신을 미워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다고 증언한다(슈테판 츠바이크, 발자크 평전).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어머니의 격렬한 반대가 문학에 대해 타오르는 그의 열정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반대하는 사랑에 불이 붙듯, 어머니가 가로막아선 문학의 길이었기에 더 맹렬히 타올랐다는 얘기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드리워 있던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강박적 글쓰기와 여인들의 사랑에 대한 집착과 갈망, 그리고 인정에의 목마름 같은 것들이 그를 문학적 성취 쪽으로 휘몰아갔던 것이다.

어쨌든 발자크는 위인, 큰 작가로 일컬어진다. 내 나름대로 프랑스에서 위대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예술적 천분을 십분 발휘한 경우는 물론, 그 생애 자체가 불꽃처럼 타오를 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는 여러 면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닮았다. 재능은 차치하고서라도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여성과의 끝없는 염문과 그것이 창작으로까지 연결된다는 점이 그렇다. 다만 피카소는 그 열정과 에너지를 90여 년에 걸쳐 분배해가며 쓸 줄 알았던 영리함이 있었던 데 반해 발자크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글을 쓰고 50세 나이로 떠났다는 점, 그리고 젊은 날에는 똑같이 가난했지만, 피카소는 명성과 함께 억만장자가 됐는데 발자크는 우레와 같은 명성을 얻고도 죽음에 이르기까지 빚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다는 점 정도가 달랐다.

그런데 나는 피카소의 장수와 발자크의 단명을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서로 다른 장르로 본 관점에서다. 한마디로 문학은 쪼아대는 것이고 미술은 풀어헤치는 것이다. 특히 피카소형(型) 미술가는 더욱 그렇다. 그는 견딜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마치 사정하듯 선과 색으로 끝없이 방출한다. 여성과의 스캔들마저 창작의 변곡점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창작을 향해 터져 나오는 열정의 근원이 여성을 향한 에너지의 근원과 비슷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도자기 판화, 드로잉을 포함해 생애 동안 무려 4만여 점을 쏟아낸다. 실로 경이적인 기록이었다.

발자크의 경우는 어땠는가. 역시 황소 같은 힘을 가졌지만 마치 하루 종일 좁쌀의 개수를 세듯 문자와 씨름해야 했다. 비슷한 문장이나 내용이 나오면 비평가들은 벌떼같이 달려들어 ‘자기 복제’라며 비판했다. 물론 자기 심화니 자기 복제니 하는 용어는 오늘날에 쓰는 말이지만 비슷한 언어를 사용해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렸다는 것은 같다. 더구나 문학은 언어라는 약속된 체계 안에서 이뤄지는 엄정한 객관의 세계다. 우선 비문(非文)이 나오면 안 된다. 그래서 발자크와 같은 에너지 발산형 예술가가 좁쌀을 세듯 하루 종일 문자와 씨름한다는 것은 자기를 소진하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두 사람 다 해방구는 여성과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서로 달랐다. 발자크는 끝없이 구애했지만, 피카소는 무명시절의 첫 전시 타이틀이었던 “나는 피카소다”처럼 여성 위에 군림하고 끌어당기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여인과 사랑에 빠질 때마다 창작세계가 요동쳤다는 점에서만은 두 사람이 같았다. 발자크는 처음 여동생의 친구인 한 유부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오직 그녀만을 위해 썼다며 시와 소설을 바친다. 그러다가 그보다 무려 15세나 연상이었던 한 공작부인의 우아함과 지적 매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리고 꽃 대신 역시 1권의 소설을 헌정하며 구애한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 쓴 것이라며. 훗날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버려진 여인’을 속필로 써서 그녀에게 바치며 사랑을 호소한 것이다. 초기에 가장 크게 히트한 ‘나귀 가죽’이 연결고리가 돼 이미 프레데리크 쇼팽의 연인이었던 여인과 깊은 관계로 가기도 했다.

카스트리 공작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휘몰아 쓴 것이 ‘서른 살의 여인’이었다. 그러다 1833년에 “천국으로부터 꽃 한 송이가 홀연히 내 앞에 떨어졌다”며 마리 뒤 프레네를 예찬하고 그녀에게 구애하느라고 속필로 책 1권을 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100편이 넘는 소설 가운데서도 대표작 중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외제니 그랑데’다. 그 마리 뒤 프레네는 스물넷의 나이로 발자크의 아이를 가진다. 그는 평론가나 독자보다도 유독 여인의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했다. 그런데 발자크의 사랑의 행로를 들여다보면 여인들 가운데 유부녀가 많고 그것도 지위와 재력을 함께 가진 여자가 많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경제적으로 후원해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피카소는 어땠는가. 역시 여인과의 사랑, 이별, 애증이 작품세계의 한 메인스트림이 됐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가난한 시절에 만났던 페르낭드 올리비에는 그의 모델이기도 했는데 육감적인 데다 묘한 백치미를 가져 실명의 제목을 붙여 검은 그림으로 그렸고, 또 다른 여인 에바 구엘 역시 동명의 제목으로 형태를 단순화해 화려하게 그렸다. 러시아 무용가 올가 코를로바는 정식으로 결혼한 첫 아내였고 역시 그녀를 연상하게 하는 여러 점의 작품을 남긴다. 마리 테레즈 월터는 피카소가 45세 때 만난 17세 소녀였다. 다섯 번째 여인 도라 마르와는 종종 다투고 불화했는데 큐비즘적 경향으로 제작한 ‘우는 여자’는 그런 상황을 그린 것. 피카소는 ‘창조적 파괴’라고 불릴 만큼 자신의 세계를 부수고 새로 짓는 데 명수였다. 그만큼 자신만만해서 한 스타일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질 만하면 마치 한 여인에게서 다른 여인으로 옮겨가듯 낯설고 다른 양식을 만들어냈다.

발자크 역시 어느 한 스타일에만 만족하지 못하는 문학적 대식가였다. ‘마지막 걸작’ 같은 철학적 소설, ‘나귀 가죽’ 같은 환상소설, ‘골짜기의 백합’처럼 서정시 같은 작품. ‘고리오 영감’이나 ‘외제니 그랑데’ 같은 심상적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 등을 전방위적으로 썼다.

소설이 철학적인 가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그는 소설과 철학의 경계에 선 듯한 몇 편의 작품을 쓰기도 했으며, 계층과 개인의 문제를 다루며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경향의 작품을 집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학적 탐식자는 안타깝게 단 한 번도 여유 있는 글쓰기를 하지 못했다. 장생구시(長生久視), 옛 중국의 대학자가 지적했던 그 말을 실천했다면, 아마도 발자크는 그 재능과 몰아치는 힘으로 미뤄 역사에 남을 명작을 더 많이 남겼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발자크가 남긴 명언들

“불행은 가장 훌륭한 스승”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발자크가 남긴 명언들은 인구에 회자된다. 인생의 온갖 풍상을 겪으며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서곤 했던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것들이어서 그 감동의 폭이 크다.

“불행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 권의 책이다.”

“불행은 예고 없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모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밟고 일어나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남자의 첫사랑을 만족시키는 것은 여자의 마지막 사랑뿐이다.”

“수많은 망각 없이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악이 들어 있지 않은 선이란 없다.”

“절약하는 사랑은 결코 사랑이라 할 수 없다.”

그의 글은 오늘도 수많은 사람에게 읽히며 삶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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