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자율적인 자아는 남성 자아?

한겨레21 2021. 1. 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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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생물학, 특히 재생산적 생물학을 생각하면 개인의 자아충족은 불가능한 가정이다.

그는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이성적이고 자유롭고 자율적인 자아는 남성 자아이며,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는 규범적 이중론은 정치적 유아론과 회의주의를 낳는다고 비판한다.

그는 인간본성을 사회적 맥락과 무관한 개인의 속성으로 보는 자유주의에 가장 비판적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조건과 사회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생식과 양육 같은 행위조차 순전히 자연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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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문장]068 자유롭고 자율적인 자아는 남성 자아?
미국 콜로라도대학 볼더캠퍼스 누리집 갈무리

인간 생물학, 특히 재생산적 생물학을 생각하면 개인의 자아충족은 불가능한 가정이다. 어린아이가 잘 자라려면 인간은 사회집단에서 살아야 한다. 인간의 상호의존성은 필수적이며 (…)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에 대한 가정은 수많은 남성(그리고 대부분의 여성)이 수많은 시간을 타인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앨리슨 재거 지음, <여성해방론과 인간본성>, 지역여성연구회 공미혜·이한옥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 49쪽, 53쪽, 1992년

새해에는 페미니즘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나 고민하다 맞춤한 안내서를 찾았다. 19세기 자유주의 페미니즘부터 최근의 포스트식민주의, 퀴어와 에코페미니즘까지 다양한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 책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인데 이걸 읽고 심화학습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계획은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52쪽에서 앨리슨 재거(사진)의 자유주의 비판론을 접한 순간 책장이 좀체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이성적이고 자유롭고 자율적인 자아는 남성 자아이며,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는 규범적 이중론은 정치적 유아론과 회의주의를 낳는다고 비판한다.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자아이기를 바랐고 그런 자아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온 나는 놀랐다. 그게 왜 문제지?

앨리슨 재거는 답한다. 왜냐면 인간은 자유주의 정치학이 가정하듯 태어날 때부터 고독한 원자가 아니라 집단 속에 살아가며 그러지 않고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만의 욕구를 가진 고독한 개인들이 계약을 맺어 사회를 형성한다는 자유주의의 정치적 유아론은 근본부터 잘못됐다. 인간에게는 “협조가 아니라 경쟁이 이례적인 것”이므로, 자유주의 정치학이 설명해야 하는 건 개인들이 왜 함께 모이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무엇 때문에 공동체가 해체되는가”이다. 맞다! 이 당연한 사실을 왜 잊었을까.

나는 오래전 절판된 그의 책 <여성해방론과 인간본성>을 찾아 헤매다 간신히 도서관에서 밑줄로 도배된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1세대 페미니즘 철학자인 앨리슨 재거는 책에서 네 가지 주요 페미니즘 이론-자유주의,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급진적 여성해방론,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그는 각각의 인간본성론에 주목하는데,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인간사회에 대한 이해도, 사회의 모순과 해결책을 보는 눈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본성을 사회적 맥락과 무관한 개인의 속성으로 보는 자유주의에 가장 비판적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조건과 사회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생식과 양육 같은 행위조차 순전히 자연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 경제가 사적 영역이었듯) 임의적인 것이고, 이에 기초한 성별 분업은 여성의 종속을 심화하는 남성 지배의 토대다.

이러한 지배-종속 관계를 끝내기 위해 그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입장에서, 모든 생활영역에서 성별 분업을 제거하는 재생산적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그는 억압이 ‘여성적인’ 여성과 ‘유치한’ 어린이를 창조했다면서, 이 억압에 반대하는 민주주의에는 여성은 물론 어린이도 동등하게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이든 어린이든 모든 존재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관계의 성원이므로.

앨리슨 재거의 글을 읽는 동안 ‘정인이 학대 사망사건’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반복되는 사건에 새삼스러운 반응이 오히려 낯설다. 한 사람을 불쌍한 존재로 대상화하는 ‘피해자 만들기’는 이제 그만두자. 정말 학대를 멈추고 싶다면, 각자의 몫과 책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민주주의가 정의다.

김이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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