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101] 수수께끼 같은 '셀던의 동아시아 항해도'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2021. 1. 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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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던의 동아시아 항해도(출처: The Bodleian Library)
티머시 브룩Timothy Brook의 저서 <셀던의 중국지도>로 국내에도 알려진 이 지도는 영국의 법률학자이며, 해양 이론가인 존 셀던John Selden이 소장하고 있던 ‘동아시아 지도’이다. 그의 소장품은 1659년 그의 재산 집행인들에 의해 영국 옥스퍼드대학 보들리안 도서관Bodleian Library에 기증되면서 이 지도는 ‘셀던의 중국지도Selden Map of China’라고 불리게 되었다. 2008년 미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배첼러Robert Batchelor에 의해 재발견되었고, 2011년 도서관 문서보존 팀의 복원 작업을 거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도는 종이에 채색필사로 제작되었고, 크기는 가로 96cmㆍ세로 158cm이다. 복원 전의 지도는 직물로 배접이 되었으며, 상단과 하단에 축목軸木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벽에 걸었던 괘도로 추정된다. 지도에는 제목이나 간기刊記가 없어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17세기 초 중국인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지도에 그려진 범위는 북쪽은 흑룡강, 동쪽은 일본, 서쪽 끝은 고리국古里國, 즉 인도 남서해안의 캘리컷(현재의 코지코드)이고, 남쪽은 인도네시아의 자바섬까지로 동아시아 전역을 나타내고 있다.
지형을 나타내는 산은 마치 산수화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산 곳곳에는 소나무ㆍ대나무ㆍ삼나무ㆍ야자수 등 각종 나무와 난초ㆍ모란 등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하천은 쌍선으로 굵게 그려졌는데, 중국에 그려진 쌍선은 하천이 아니라 성省의 경계를 나타낸다. 모든 지명은 한자로 표기되었고, 행정지명은 모두 원 기호 내에 써넣었는데, 중국의 15개 성은 가장 큰 원 기호에 가장자리에 성벽이 그려져 있다. 그밖에 섬ㆍ산ㆍ하천ㆍ호수명 등이 표기되어 있는데, 가장 서쪽의 성숙해星宿海는 황하의 근원이고, 고리국古里國은 인도 서쪽 해안의 캘리컷Calicut이다. 조선은 ‘조선왕朝鮮王’이라 표기되었고, 일본 북쪽의 칠도산七島山은 후지산富士山으로 비정한다.
중국에는 지명 외에도 작은 원 기호 내에 써진 ‘일日ㆍ월月ㆍ기箕ㆍ미尾’ 등은 이십팔수二十八宿로, 천구天球에서 하늘의 적도를 28개 별자리로 구분한 것으로, 일본 북쪽에 그려진 태양과 지도 왼쪽 상단에 그려진 달과 함께 정밀한 천문 관측의 기준이 된다. 또한 고리국 옆에는 아덴阿丹과 도파르法兒國, 호르무즈忽魯謨斯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 있는데, 거리 단위는 경更(1경은 60리)으로 표시했다.
이 지도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만리장성 북쪽에 그려진 중국 전통의 24방위 항해나반航海羅盤과 자尺, 그리고 빈 직사각형이다. 나반 중앙의 작은 원에는 나침반이란 뜻으로 ‘나경羅經’이 쓰여 있고, 나반에 표시된 방위는 24방위로, 12지支의 자子ㆍ묘卯ㆍ오午ㆍ유酉를 4방위로, 8괘卦의 간艮ㆍ손巽ㆍ곤坤ㆍ건乾을 8방위로 정하고, 그밖에 12지 중 8지와, 10간干 중 8간으로 24방위를 나타내었다. 그런데 이 나반은 정북正北으로 놓인 것이 아니라 서쪽으로 7.5° 틀어져 있고, 그 밑의 잣대는 틀어진 방위와 수평으로 그려져 있다. 잣대의 전체 길이는 1자尺(30.3cm)이며, 10개의 눈금이 그어져 있다. 따라서 나반은 항해 시 지도와 함께 사용하기 위해 서편 7.5°인 자북磁北 방향으로 놓여 현대 지형도의 자침편차각磁針偏差角과 같고, 우측에 그려진 빈 직사각형은 지도의 북쪽인 도북圖北 방향을 나타내기 위해 그린 것이다.
지도상에서는 식별하기 어렵지만, 항로가 일본ㆍ류큐琉球ㆍ중국 취안저우泉州ㆍ루손(마닐라)ㆍ통킹東京ㆍ퀴논新州 등과 지금의 말레이시아 파항彭坊ㆍ인도네시아ㆍ수마트라섬ㆍ인도의 캘리컷까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자바해, 인도양을 아우르는 해역에 걸쳐 거미줄처럼 그려져 있다. 모든 항로상에서 방향이 바뀌는 곳에는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인 침로針路가 표시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중국의 취안저우泉州에서 갈라지는 세 개의 항로 가운데 일본 쪽 북동 항로는 ‘간인艮寅(52.5˚)’ 방향이고, 루손 쪽 남동 항로는 ‘병丙(165˚)’ 방향, 베트남 쪽 남서 항로는 ‘곤신坤申(232.5˚)’ 방향으로 표시했다.
이 지도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고, 어떤 경로로 영국으로 건너가 셀던의 소장품이 되었는지에 대해 학자들마다 주장이 달라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 지도를 연구한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지도가 1606년에서 1624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동의했으나, 티머시 브룩은 존 사리스John Saris가 지도를 입수해 1609년 10월에 영국으로 가져왔다는 주장을 근거로 더 이른 연도를 주장했고, 2016년 영국 노팅엄 트렌트대학의 연구원들은 이 지도에 사용된 결합 매체와 색소의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수마트라 아체Aceh에서 제작되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화학적 분석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로버트 배첼러는 지도의 내용으로 판단해 제작연대를 1619년 이후라고 주장하면서 명나라 말기 중국 남부와 일본 등지에서 활약한 무역상인 정지룡鄭芝龍이 그의 후원자인 거상 이단李旦을 위해 제작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일본에 표시된 두 개의 빨간 국화는 이단의 상단商團 본부가 있던 히라도平戸를 표시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주장했다. 또한 2019년 <The Selden Map of China>라는 책을 낸 훙핑 애니 니Hongping Annie Nie는 영국 동인도회사EIC 소속 무장 상선인 엘리자베스Elizabeth호가 대만 근처에서 이단의 배를 나포했을 때 지도가 배에 실려 있었다고 추정했다.
이단은 복건성 취안저우 출신 무역상으로, 천주교 세례명은 안드레아 디티스Andrea Dittis이고, 화교의 우두머리라고 해서 ‘차이나 캡틴’으로 불렸다. 그는 처음 마닐라에 거점을 뒀으나, 뒤에 일본 히라도로 옮겨 에도막부의 해외도항 허가증인 주인장朱印状을 받아 남해무역에 종사했고, 1613년에는 영국 동인도회사가 일본으로 들어 올 때 자기 집을 상관商館으로 쓰게 했다. 이때의 상관장이 리차드 콕스Richard Cocks이다.
‘주인선朱印船 제도’란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1604년부터 실시한 해외교역으로, 주인선은 반드시 나가사키에서 출항해, 나가사키로 귀항케 했는데, 명나라와는 일본 배의 내항을 금지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교역이 없었고, 조선과의 교역은 대마번對馬藩에 일임했다. 쇄국정책에 의해 1635년 단절될 때까지 주인장을 받은 사람은 일본 상인과 영주大名, 무사들과 중국인, 유럽인 등을 합쳐 105명이고, 주인선 총수는 356척에 달했다. 교역지는 빈도순으로 교지交趾(베트남)ㆍ시암(타이)ㆍ루손(필리핀)ㆍ안남安南(베트남 북부)ㆍ캄보디아ㆍ타카사고高砂(타이완) 등이고, 먼 곳은 믈라카ㆍ자카르카ㆍ말루쿠제도(인도네시아) 등 모두 19곳인데, 기항지마다 일본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단은 주인선 12척을 가진 거상이었고, 이단의 뒤를 이은 사람이 정지룡이다. 정지룡은 1623년 삼촌 황정黃程의 위임을 받아 이단의 배에 화물을 싣고 일본 히라도에 도착한 뒤 이단의 수하가 되었고, 1625년 이단이 사망하자 선단을 이어받았다.
로버트 배첼러의 주장대로 정지룡이 거상 이단을 위해 지도를 제작했다면 제작 시기는 1623년에서 1625년 사이가 되어야 한다. 또한 엘리자베스호가 일본 선박을 나포한 때는 1620년 6월이므로, 훙핑 애니 니의 주장대로라면 1620년 이전에 지도가 제작되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지도의 전체적인 내용과 항로의 형태는 일본의 주인선 무역루트와 매우 흡사하고, 일본 히라도에 두 송이의 빨간 국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판단해 이단의 주인선단에 속한 중국인이 제작한 것이고, 영국 무장상선 엘리자베스호가 이단의 선박을 나포한 것이 사실이라면 제작 시기는 1613년에서 1620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지도 제목도 ‘셀던의 중국지도’보다는 ‘셀던의 동아시아 항해도’가 적절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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