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고경명-광순종가, 음식·시문까지 K헤리티지 집결
두 아들 종후-인후와 임진왜란 의병 순국,순절
고인후 부인이 일가 거느리고 학봉종가 길 터
구한말 고광순 의병장, '불원복'군기 앞세워 항전
노비들에 제사 지내..씨간장·죽로차 음식 일품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장흥고씨는 고려 후기, 제주고씨 중시조로부터 10세손인 고중연이 외적 침입때 공민왕을 잘 보좌한 공을 인정받아 장흥백(長興伯)에 봉해지고 후손들이 장흥 일대에 터 잡으면서, 제주와는 별도의 본관을 삼게 됐다.
장흥은 고려 인종의 처가이자, 의종,명종,신종의 외가 고을로 고려왕실이 가장 아끼던 곳인데, 공민왕이 ‘안동 피란정부’ 시절 측근이던 고중연을 장흥 일대 리더로 발탁한 것은 매우 각별한 정을 쏟았다는 뜻이다.
이후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문신이자 선비인 고경명-종후·인후 삼부자가 고을 리더의 책임감으로 의병장이 되어 전공을 세우다 전사한 뒤, 학봉 고인후의 함평이씨 부인이 위기에 빠진 고씨 일가를 거느리고 친정가문의 랜드마크 상월정이 있는 창평(담양)에 이거하면서 장흥고씨 학봉종가가 성립된다.
간악한 일본이 16세기나 20세기나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충무공의 수군과 기습에 능한 의병이며, ‘의병은 대대로 의병이고, 리더의 솔선수범으로 백성이 단결한다’는 한국인들의 DNA였다. 16세기 고경명 삼부자에 이어, 19~20세기 학봉종가의 후손 고광순 역시 의병장이 되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요즘 권력이나 돈을 가질수록 국민 의무인 병역을 기피하려는 세태가 눈총을 받으며 한국엔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지만, 남도 종가, 고을 리더들 중에는 누란의 위기때 선봉에 서는 인사가 매우 많았고, 고경명-종후·인후-고광순 가(家)는 그 중심에 있었다. 군 전체 경제를 이끌던 천석꾼의 풍요로움을 마다한 출정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산 교육장, 창평에 있는 ‘호남의 정신관’에서는 작금의 팬데믹 상황을 제외하곤 의병 체험을 하는 남녀노소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취미가 국난극복’, 한국인을 향한 요즘 지구촌 유행어가 새삼 떠오른다.
제봉 고경명 의병장은 문과,무과,이과,상과,예과 중 문과에 가깝다. 진사시험 입격후, 벼슬길을 여는 2차시험 식년시 문과(1558년)에서 압권(맨 위의 답지가 다른 수만장을 누름)으로 장원급제하며 관광(용안을 봄)했던, 요즘으로 치면 행시·사시 통합수석이다. 정치적 우여곡절 속에 삼사교리, 세 곳의 군수, 성균관교수, 당상관인 예조참의, 동래부사 등을 하면서 파직과 복직을 거듭했다. 낙향 중 쓴 시문 ‘제봉문집’ 목판 등은 문화재가 됐다.
고경명은 1592년 일본이 침략하자 6000명의 자원자 등을 규합해 의병장으로 나섰다. 진주전투 직후 순절한 큰아들 고종후 의병장은 김천일,최경회와 함께 진주 3장사로 불린다.
둘째아들 인후와 고경명은 금산전투에서 순국한다. 숭고한 희생에 국가는 고경명-종후-인후 삼부자 집안에 숱한 영예의 추서와 함께 ‘불천위’(나라에서 큰 공훈을 인정하여 제사를 영원히 모시도록 허락함) 명예도 내린다.
300년쯤 뒤 고광순 구한말 의병장은 “가국지수(家國之讐 집안과 국가의 원수)를 갚자”며 의병을 모았다. 고광순은 숱한 항일 의병들 중 처음으로 소총 무장하는 등 짜임새 갖춘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사격 의병대를 훈련시키기 위해 지리산 피아골에 들어갔으며 ‘불원복’ 군기(나라를 곧 되찾게 될 것이니 힘껏 싸우라는 격려를 담은 태극기·등록문화재 394호)를 앞세우고 60세까지 장기 항전했다. 학봉종가의 가훈은 ‘세독충정’(대대로 나라에 충성하자)이다.
모든 법조인의 귀감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외가이기도 한 장흥고씨 학봉파는 ‘봉이·귀인’ 등 가족같이 지내던 노비의 제사도 매년 올린다.
‘소나무 언덕’, ‘종부의 다실, 역사교실’ 등 이름으로 다양한 종가 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씨간장으로 맛을 낸 종가음식, 죽로차, 녹차설기떡은 유명하다. 지난해 전남도 사회적기업의 음식문화콘텐츠 ‘종가포레스트’ 첫 회가 학봉종가였다.
고경명 집안을 의병으로만 기억하는 것도 완전치 않다. 그 집엔 아름다운 K헤리티지의 면모가 다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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