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맑고 그윽한 한란의 향기를 맡다

김민철 논설위원 2021. 1. 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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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꽃향기가 나는 듯했다. 한란이 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 서둘러 체온 체크를 받은 다음 전시실로 입장했다. 수많은 화분이 있었는데, 처음 눈에 띈 화분에선 꽃대를 찾을 수 없었다.

얼마전 제주도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코로나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잘하면 한란이 꽃 핀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한란은 11월에서 1월까지 피는 꽃이다. 어디에 가면 볼 수 있을지 알아보았다. 일정상 자생지(서귀포시 상효동 돈네코 계곡, 제주한란전시관)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고 제주시 한라수목원에도 난 전시실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전시실을 돌아 6~7미터쯤 갔을 때 드디어 꽃대가 올라온 난 하나가 보였다. 맑고 그윽한 향기를 따라간 건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가니 향기가 훅 끼쳤다. 한란이 확실했다. 그 많은 난 중에서 단 하나의 난에 꽃이 피어 있었다. 코를 한란 가까이 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 향기를 뭐라 표현해야 할까? 세상에 이보다 좋은 향기가 있을까 싶었다.

한란 향기를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꽃에 대한 글을 쓸 때 가장 난감한 것이 향기를 전하는 일이다. 국어사전에 ‘청향(淸香)’이라는 단어가 있긴 하다. 맑은 향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맑으면서도 그윽하게 퍼지면서 깊이까지 있는 이 향기를 그냥 ‘청향’이라고 하기엔 부족할 것 같다. 보는 것을 사진으로 담듯, 향기를 디지털로 담는 기술이 나오면 꼭 한란 향기를 담아 올리고 싶다.

무감각해질 때까지 향기를 음미한 다음 난 전시실을 찬찬히 둘러보았지만 꽃이 핀 한란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시실에 올 때 목표를 200, 300% 이룬 것 같아 기뻤다. 자생지에서 한란을 만나면 더 좋았겠지만, 한란을 처음 ‘알현’하는 처지에 전시실에서 향기를 맡은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한란. 제주 한라수목원 난 전시실.

한란은 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그 자태와 향기가 난초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11월에서 1월까지 추위 속에서 피는 난초라고 한란(寒蘭)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겨울꽃인 셈이다. 꽃 색깔은 녹색, 자주색, 붉은색 등 여러 가지다. 제주도에서 그것도 한라산 남쪽 기슭에서만 자라는데,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채취해 지금은 한라산 남쪽 돈내코 계곡 자생지를 보호하고 아주 제한적으로만 공개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제주 한란이라는 종 자체(191호)와 서귀포 자생지(432호)를 둘 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종 자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은 한란이 유일하다.

자연 상태에서 담은 한란. /이재능

한란은 보춘화 비슷하게 생겼다.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뜻의 보춘화(報春花)는 초봄에 피어 ‘춘란(春蘭)’이라고도 부른다. 보춘화는 꽃대에 꽃이 대개 1개씩 달리고 잎 가장자리에 돌기 같은 톱니가 있지만, 한란은 한 꽃대에 꽃이 여러 개 달리고 잎 가장자리가 밋밋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보춘화는 충남 이남 산에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영전이나 승진을 축하할 때 보내는 난은 대부분 보세(報歲)란으로, 푸젠·광둥성 등 중국 남부와 대만에서 생산해 국내로 들여온 것이다.

보춘화. 초봄에 피는 꽃이라 춘란이라고도 부른다.

옛 선비들이 그린 사군자 속 난을 보면 꽃대에 꽃이 하나인 보춘화가 아니라 여러 개인 한란과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흥선대원군이 그린 ‘묵란’을 보면 꽃대에 꽃이 서너 개씩 달린 것이 한란인 것 같다. 추사 김정희도 1840년 제주도에 유배 와 9년 살면서 한란을 감상하면서 즐겨 그렸다. 추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속 난초도 꽃은 한 송이지만 꽃대 모양으로 보아 한란이다. 자생지에서 핀 한란은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흥선대원군(이하응)의 '묵란'.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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