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업! K리그] "승복과 성장, 기회의 평등" 설기현의 원칙, 승격으로 빛날까
편집자주
2021 시즌 준비를 위해 국내에서 구슬땀 흘리는 K리그 구성원들의 다짐과 목표, 그리고 팬들을 향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설기현(42) 경남FC 감독은 프로무대 사령탑 데뷔 시즌이던 지난해 K리그2(2부리그) 경남을 K리그1(1부리그) 승격 코앞까지 이끌었다. 수원FC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0으로 앞서던 경기 종료 직전 상대에 페널티 킥 골을 내주고 패했지만 그는 끝까지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켰다. 1-1 플레이오프에서 무승부로 끝날 경우 정규리그 상위 성적을 거둔 팀이 승격하는 규정도, 마지막 순간 페널티 킥을 선언한 심판도 원통했을 법하지만 설 감독은 경기 후 “왜 (경남이)수원과 승점 차가 15점이나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며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자리를 떠났다.
승복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던 설기현 감독은 2021년 구단 일정을 동계 전지훈련지인 경남 통영시에서 시작했다. 17일 통영에서 만난 설 감독은 지난해 승격 기회를 놓친 게 아쉽진 않았는지 묻자 “경기 끝난 뒤 며칠간 김도균 감독님과 통화하기 싫어서 문자가 와도 답장을 안 했다”며 껄걸 웃었다. 사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대표팀 등에서 활약한 절친이지만, 그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기에 한동안 김 감독의 연락도 반갑진 않았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경이다.
그럼에도 그는 “스포츠에서 승복은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설 감독은 “솔직히 심판들께 따뜻한 말을 드릴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중히 인사하고 경기장을 떠났다”며 “져놓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심판이나 상대팀에)따진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상대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승리를 인정받을 자격이 안 된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승복하는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자리잡아야 할 문화”라고 강조했다.
그가 감독으로 부임한 뒤 나름대로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원칙은 ‘성장’, 그리고 ‘기회의 평등’이다.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는 할 수 있지만, 그 패배나 실패를 통해 성장하지 않으면 그게 진짜 패자라는 생각이다. 설 감독은 “감독 부임 첫해 승격을 하지 못했지만 처방을 잘 내리고 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시즌 막판에 내가 원하던 축구가 잘 구현돼 다음 시즌에 대한 희망을 본 건 소득”이라고 말했다.
기회의 평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딩과 풀럼, 울버햄튼, 그리고 벨기에 안더레흐트 등에서 활약했던 그는 “해외 무대에서 실력대로 경쟁해 보니 선수의 나이가 많든 어리든, 베스트 플레이어 같은 상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보다 감독이 원하는 플레이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며 “학연이나 지연, 그리고 과거의 명성 같은 요인을 지우지 않고 선수 선발을 하다 보면 팀의 성장이 더딜 수 밖에 없는 것 같다”고 소신을 밝혔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고서는 꾸준히 편견과 맞서 왔다.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 감독과 같은 철학을 내세운 그는 “(당시와 비교해도)사회 전반이 변화했다”고 진단했다. 모교 출신이 아니라면 어려울 것이라던 성균관대 사령탑에 2015년에 부임,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 했던 성균관대를 2016년 FA컵 32강전에서 프로팀(서울이랜드)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듬해 춘계대학연맹전에선 팀을 38년만의 결승 진출로 이끌며 영웅이 됐다. 지난해 경남 사령탑 부임 후엔 자신보다 무려 7세 위의 수석코치를 뒀다. 설 감독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돕는, 경험 많고 능력 있는 분을 모셔왔을 뿐이다”라고 했다.
승복과 성장, 그리고 기회의 평등이란 대원칙 아래 그는 2021시즌 승격에 재도전한다. 국가대표 공격수 이정협(30) 등 알짜 선수들이 합류한 게 큰 힘이 된다. 승격을 목표로 내건 설 감독은 “한동안 다시 강등되지 않는 강한 팀을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K리그는 아직 팬들이 ‘알아서’ 찾아와 주는 무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선수들과 함께 팬을 늘리고, 한 번 온 팬들은 앞으로도 계속 경남 경기를 보러 오고 싶게 만들도록 경기장 안팎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통영=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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