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대전환] 대니얼 예긴 "석유시대 종말, 아직 멀었다..에너지 전환 승자는 중국"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신(新)에너지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은 중국이 에너지 전환 시대 최대 승자로 부상할 겁니다. 한국은 강점을 지닌 배터리 분야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대니얼 예긴(73) IHS마킷 부회장은 최근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글로벌 에너지 지형이 바뀌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예긴 부회장은 석유의 발견으로 탄생한 부와 권력, 분쟁의 세계사를 다룬 저서 ‘황금의 샘’(The Prize)으로 1992년 퓰리처상을 받은 에너지 전문가다. 신재생 에너지의 확산을 예고한 후속작 ‘2030 에너지전쟁’(The Quest)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예긴 부회장은 지난해 출간한 신간 ‘The New Map’에서 세계 에너지 지도를 새로 그렸다. 그는 세계 에너지 패권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에서 미국·중국·러시아 3국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셰일 혁신’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이 중동산 석유 수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데다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각국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와 전기차 보급을 늘리는 등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는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긴 부회장은 내다봤다.
그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지난해 석유 수요가 직격탄을 맞았지만, 석유시대의 종말을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진단했다. 다가올 미래에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전부 전기차로 바뀌더라도 항공, 기차, 선박 등 석유를 필요로 하는 산업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긴 부회장은 "석유 수요는 내년쯤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한 뒤 203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국제유가는 배럴당 40~50달러선에 머무는 일명 ‘바이러스 골목’(Virus Alley)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예긴 부회장은 "광범위한 백신 접종이 이뤄진다면 연내 배럴당 50~65달러선도 기대할 수 있다"며 "다만 올 겨울을 기점으로 코로나 신규 감염이 급증하면서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있어 당분간 유가도 바이러스 골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해 석유 수요가 급감했다. 올해는 회복될까.
"글로벌 석유 수요는 올해 말이나 내년이면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말 석유 수요는 2019년 대비 8% 감소한 데 그쳤고, 중국은 이미 최근 몇 달간 석유 수요가 2019년 수준을 넘어서는 등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최근 코로나 신규 감염이 늘면서 당분간 석유 수요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을 목표로 저(低)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요국의 ‘탄소제로’ 선언이 세계 에너지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제로는 엄청난 도전이다. 이는 90조달러(약 10경원) 규모 세계 경제의 기반이 되는 에너지 시장의 근본 구조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화석연료는 세계 에너지 소비의 84%를 차지한다. 탄소제로 목표 달성에 필요한 새로운 저탄소 에너지 공급망과 이를 둘러싼 지정학적 역학 관계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석유와 가스는 앞으로도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남겠지만, 석유수급과 안보 우려는 이전보다 줄어들 것이다."
-에너지 패권이 사우디 등 산유국에서 중국, 미국, 러시아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을 꼽은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이 에너지 전환의 최대 수혜국이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두가지다.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은 필요한 석유의 75%를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전략적 문제로 인식해왔다. 특히 중동에서 수입하는 석유는 남중국해를 거쳐 들어오는데, 이 지역에서 미국과 계속 부딪혀왔다. 그래서 중국은 러시아와 손잡고 천연가스 수입을 늘리고 있다. 수입 석유 의존도가 낮아지면 그만큼 지정학적 위험이 줄어든다. 여기에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희토류 등 이른바 신(新)에너지 분야에서 공급망을 장악하는 등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어 앞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외에 에너지 전환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이스라엘이다. 한국은 배터리 분야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는데, 탄소제로를 목표로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면서 배터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한국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부는 탈석탄·탈원전을 추진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보급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한국 에너지 시스템에 조예가 깊지 않아 의견을 내기 어렵다. 다만 원자력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이미 수차례 밝혔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기술적 한계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탄소제로 목표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 등 단점을 보완할 혁신적인 신기술이 필요하다. IHS마킷은 이런 기술로 첨단 소형모듈원전(SMR), 수소, 차세대 에너지저장 기술과 배터리 등을 선정했다."
-에너지 전환 논의가 태양광·풍력에 집중된 경향이 있는데 원전과 수소는 어떤 역할을 맡을까.
"미국의 경우 첨단 원자로를 연구하는 기업과 프로젝트가 약 62개에 달한다. 이 정도면 원전을 향한 관심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은가. 수소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IHS마킷이 4년 전 ‘수소와 재생에너지 가스 포럼’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게 가능할까?"라며 의구심을 품었다. 이제 글로벌 기업들이 수소를 에너지 전환의 핵심 연료 중 하나로 보고 사업을 키우고 있다. 물론 수소는 비용 절감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밀어내고 주력 에너지원으로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으로 예상하는가.
"에너지 시장의 중심축이 화석연료에서 신재생 에너지로 이동하고 있다는 큰 흐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오래 걸릴 것이다. (그는 책에서 석유가 주력 에너지원으로 석탄을 대체하기까지 100년 이상 걸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생각해보라. 당장 태양광·풍력만 사용해 전기를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전 세계 발전용량을 지금의 2배 규모로 늘려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태양광·풍력발전의 보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비용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전망은 밝다. 석유 수요는 2030년대 중반쯤 정점을 찍고 그 이후 점진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은 ‘청정 에너지’ 혁명을 예고했는데, 이런 전략이 미국이 에너지 전환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보는가.
"앞으로 많은 자원과 보조금이 ‘청정 에너지’ 분야에 투입될 것이란 데는 이견은 없다. 문제는 자금의 분배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빚이 늘었다. 앞으로 에너지 전환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싶어하는 환경·에너지 장관들과 경제 회복을 우선시하는 재무장관들 간 갈등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미 셰일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보는가.
"우려와 달리 미국 셰일산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셰일산업 덕에 여전히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다. 올 하반기부터 생산량은 다시 증가할 것이다. 에너지 전환 기조에도 셰일산업은 한동안 미국의 중요한 경제·정치적 자산으로 버텨줄 것이다."
-올해 에너지 시장에서 예상되는 변화는. 유가는 상승할까.
"현재 국제유가는 배럴당 40~50달러선에 머무는 ‘바이러스 골목’에 갇혀있다. 광범위한 백신 접종이 이뤄질 경우 배럴당 50~65달러선까지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올 겨울을 기점으로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늘고 각국의 셧다운 조치로 경제 활동이 침체되면서 유가도 ‘바이러스 골목’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졌다.
IHS마킷은 올해 글로벌 GDP 성장률을 4.5%로 예상하고 있는데,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가 협조한다면 이같은 경제 성장에 힘입어 유가도 바이러스 골목에서 벗어나 소폭 상승할 수 있다고 본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관계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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