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나라[오동희의 思見]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 1.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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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은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음을 또 다시 보여준 날이다.

사법부를 통한 단죄로 보이지만, 정치권력의 무서움을 다시 보여준 판결이다. 경제계는 다시 정치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는 계기가 됐고,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악습은 끊기 힘들게 됐다.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정치권력에 밉보이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삼성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권 승계는 대통령이 허가해야 하는 사안일까.

최근 현대자동차, LG, 한진, DB 그룹 등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 기업들을 보더라도 경영권은 정치인들이 승인해줘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의선 부회장은 핵심계열사의 지분이 많지 않음에도 정몽구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에 오르며 경영권을 승계받았다.

구광모 LG 그룹 회장은 구본무 회장 타계 후 상무에서 회장으로 바로 올라섰다. 가족회의에서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아니라, 구 회장의 장남 구광모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한진은 조양호 회장 타계 후 가족간 갈등이 있었지만,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현민 한진 부사장 등 가족의 지지를 받은 조원태 회장으로의 경영권이 승계됐다. 김남호 DB 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가족 내 결정이 기업 경영권을 결정지었다.

이런 한국 기업가문의 선례로 볼 때도 유독 삼성만 대통령에게 부탁해서 경영권을 승계했다는 논리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이미 1997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으로 삼성 그룹의 지배권은 이 부회장으로 넘어갔었다.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한 뇌물이 아닌 강압에 의한 수동적 뇌물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이와는 별개로 기업인의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부분에 대한 평가도 지나치게 박하다.

이번에 이 부회장과 함께 재수감된 최지성 전 실장은 고인이 된 이건희 회장과 함께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넘볼 수 없었던 TV 왕국 소니를 제치고, 삼성 TV를 세계 1위로 올려놓는데 혁혁한 공로를 가진 기업인이었다.

그는 전세계 TV 1위에 이어 철옹성 같던 세계 1위 휴대폰 기업 노키아를 제치고 휴대폰 1위도 이끌어 삼성전자 CEO에 올랐고, 스마트폰 전쟁에서는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에 이어 팀 쿡 CEO와도 특허전쟁을 치열하게 펼친 백전노장이었다.

30여 년을 산업 현장에서 한국 제품을 세계 1등 제품으로 만드는데 공을 세우고, 그 후 5년간 미래전략실장을 맡은 후 정치권의 요구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영어의 몸이 됐다.

집행유예를 받긴 했지만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도 대외협력담당이 되기 전에는 삼성SDI에서 폭스바겐이나 BMW 등 전세계 자동차 업계를 찾아다니며 2차 전지수출로 국부를 키웠던 기업인이다.

장충기 전 실차장도 1970년대 삼성물산에서 잡화를 시작으로 무역강국을 만드는데 힘을 쏟다가, 삼성 내에서 기획 부문을 담당하면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희망사다리(방과 후 과외) 등의 다양한 기획을 했던 기업인이다. 기업인들은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들이다.

이들은 산업역군으로서의 공로에 비해 대통령의 강압을 이기지 못해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과오에 대한 대가로 받은 처벌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최고경영자는 "기업가를 정치적 사건에 엮어 이렇게 험하게 다루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어느 누가 이제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려 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 부회장이 재수감되던 날은 대한민국에서 기업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 하루였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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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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