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가계빚·주택값 급등하면, 3년내 금융위기 확률 37%"

박현 2021. 1.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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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의 붐&버스트]하버드대 연구진 논문 '예측가능한 금융위기'서 주장
"3년간 기업부채·주가 급등시에는 3년내 금융위기 확률 45%"
서울 시내 주택가 모습

금융위기는 예측 불가능의 영역이다. 제아무리 경제현상, 그중에서도 금융시장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라 할지라도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게 그동안 불문율로 여겨졌다. 물론 급속한 신용팽창과 자산가격 폭등이 금융위기를 초래한다는 이론을 만든 경제학자들도 있다. 찰스 킨들버거와 하이먼 민스키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런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신용팽창과 자산가격 폭등이 금융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을 밝혀내긴 했지만, 금융위기를 언제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예측하지는 못했다.

이런 불가능할 것 같은 작업에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도전해 지난해 6월 논문(‘예측가능한 금융위기’)으로 발표해 주목을 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로빈 그린우드·새무얼 핸슨 교수, 하버드대 경제학과 안드레이 쉴레이퍼 교수, 코펜하겐 경영대학원 제이콥 소렌슨 교수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1950년부터 2016년까지 66년간 42개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사례를 분석해 금융위기 예측 모델을 내놓았다.

연구진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요점은 크게 6가지다. 첫째로, 기업 및 가계 신용 증가가 과거의 경로에서 벗어나 1년간 팽창할 경우 향후 5년간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2.8%포인트 높아진다. 팽창 기간이 1년에 그칠 경우 위기 초래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는 얘기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전에 주요국들은 신용 팽창과 자산가격 급등이 동반된 ‘레드존’ 상태에 진입해 있었다. 자료: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두번째는 대규모 신용 팽창이 자산가격 붐과 동반할 경우 금융위기 예측의 정도가 상당히 높아진다는 점인데, 연구진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논점이 여기에 담겨있다. 특히, 기업신용 증가율이 높으면서 동시에 주식시장 가치가 가파르게 오를 때, 또는 가계신용 증가율이 높으면서 주택가격이 급속히 오를 때, 이에 뒤따라 위기 발생 개연성이 상당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 ‘레드존’(Red-zone, 위험구역)이라는 지표를 만들었다. 레드존은 신용시장이 과열을 보이는 기간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연구진은 지난 3년간 기업신용 증가가 역대 추세에서 상위 20% 안에 들고, 같은 기간 주식시장 수익이 역대 추세의 상위 33% 안에 들면 해당 국가는 ‘기업 레드존’(business R-zone) 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했다. ‘가계 레드존’(household R-zone)도 동일한 잣대로 설정된다.

연구진이 이런 잣대로 분석을 해보니, 한 국가가 ‘기업 레드존’ 상태에 들어가면 1년 시계에서 위기 확률은 평상시의 4%에서 13%로 높아진다. 또한 2년 이내에 해당 국가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확률은 27%로 높아지고, 3년 이내에는 45%로 높아진다. 연구진은 샘플에 있는 ‘기업 레드존’ 발생 사례 75개 중에 3년 내 위기로 이어진 사례는 34개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계 레드존’이 발생할 경우 1년 이내에 금융위기 확률은 14%, 2년 이내 26%로 높아진다. 3년 이내에는 37%로 높아지고, 4년 이내에는 41%로 높아진다. 연구진은 이런 점을 들어 레드존에 진입한 후에라도 위기로 서서히 전이되는 만큼 정책당국자들이 이에 대응해 행동을 취할 시간은 있다고 밝혔다.

세번째, 연구진은 기업신용의 과열과 가계신용의 과열을 별개의 현상으로 판단했다. 42개국 금융위기 사례의 63%는 기업 레드존, 또는 가계 레드존에 뒤이은 것이었다. 예컨대, 미국은 2002~2006년에 가계 레드존에 들어갔고 2007년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그런데, 기업신용과 가계신용의 과열이 동시에 발생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날 경우 위기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1988년 일본의 거품 붕괴에 따른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네번째, 신용시장 과열은 금융의 글로벌화 현상 탓에 국가간 연계되는 특성을 갖는다. 연구진은 글로벌 감염 여부를 파악하고자 ‘글로벌 기업 레드존’과 ‘글로벌 가계 레드존’이라는 변수를 모델에 적용했다. 그랬더니 이런 글로벌 변수가 위기 가능성을 상당히 높였다. 예컨대, 독일은 2007년에 레드존 근처에도 있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샘플에 있는 국가 중 33%가 기업 레드존에, 36%는 가계 레드존에 진입해 있었다. 그 결과로 독일이 3년 내 위기를 경험할 확률은 2007년 37%나 됐고, 실제로 독일은 2008년에 위기를 겪었다. 미국의 경우 이런 글로벌 변수를 고려하면, 미국이 위기를 겪을 확률은 2002년 31%에서 2006년 51%까지 높아진 것으로 예측됐다.

다섯번째, 레드존 발생은 향후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위축시킨다. 연구진은 기업 레드존과 가계 레드존은 1년에 실질 국내총생산을 2% 하락시킬 것으로 예측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금융위기의 발생 확률이 어느 수준으로 높아질 때 정책당국자들이 조기 대응에 나서야 하느냐는 정책적 과제가 남는다. 연구진은 신용 붐 기간 중 과다 차입과 과다 투자가 발생하는 배경으로 과잉 추정에 따른 기대 오류를 꼽는다. 자산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과다 차입·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 낙관적인 믿음이 실망으로 바뀔 때 신용거품이 터지고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신용 붐의 초기 단계에 이를 막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가 레드존으로 향할 때 정부는 긴축적인 통화정책과 은행의 자기자본 확충, 경기대응적 거시건전성 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진은 금융위기 발생 확률이 40%를 넘어설 때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 레드존에 들어갔을까 궁금해진다. 연구진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95년에 ‘기업 레드존’에 진입했고, 두해 뒤인 1997년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2007년에도 ‘기업 레드존’에 진입한 바 있다. 또한 ‘가계 레드존’에는 1989~1990년과 2002~2003년 두차례 진입한 바 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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