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30조 과감한 투자 시계제로..반도체 초격차 먹구름
일각에선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을 동일시 해선 안된다"는 주장을 내놓지만 기업의 경영 현실은 그렇지 않다. 총수 리더십의 부재는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는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첨단 반도체라인의 경우 1개 라인(12만~15만장 기준)에 투자되는 비용이 30조~40조원 정도다. 개별 기업 CEO가 과감하게 투자 결정을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큰 규모다. 이사회의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따르더라도 큰 틀에서 책임은 기업 총수가 질 수밖에 없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이사회 아래서 과감하게 투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주도권을 잡은 이병철 삼성 회장의 전례가 딱 그렇다.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물론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하이닉스를 인수도 총수 결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투자금액이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할 수 있어 기업의 명운이 투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사업을 맡고 있는 담당 사장이 결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장(사장)이 전결로 할 수 있는 투자 규모는 3000억원에 그친다. 어지간한 중견기업의 1년 매출과 맞먹는 규모이지만 반도체 미래 투자 규모와 비교해 보면 1/100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사인 대만 TSMC는 지난 14일에 "올해 설비투자액이 250억∼280억달러(약 27조∼3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지난해 172억 달러보다 45.3~62.8% 늘었다. TSMC가 5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화 공정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기 위해 이런 과감한 투자에 나선 것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CEO가 현상 유지를 위한 정기 투자는 할 수 있지만, 차세대 투자 등 대규모 투자는 오너 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며 "이재용 부회장만이 갖는 네트워크와 브랜드가 부재하면 기업에게는 마이너스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전문가는 투자의 타이밍을 강조한다. 그는 "반도체 투자는 적기에 투자하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구속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투자는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총수 부재를 비상 경영시스템으로 뚫고 가기도 쉽지 않다. 예전처럼 미래전략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장단 협의체를 만들어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것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삼성 내부 관계자는 "매우 당황스럽다"며 "예상치 못한 결과여서 앞으로 일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동희 선임기자
18일 삼성전자는 전거래일보다 3000원(3.41%) 떨어진 8만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2018년 5월4일 50 대 1로 액면분할한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삼성전자 우선주인 삼성전자우도 3000원(3.87%) 떨어진 7만4600원을 기록했다.
이날 전반적인 약세장 속에 삼성전자 주가도 맥을 못췄는데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 선고를 기점으로 낙폭이 커졌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경영 전반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그룹의 지주사격이자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은 하락폭이 더 컸다. 삼성물산은 전거래일보다 1만500원(6.84%) 급락한 14만3000원에 장을 마쳤다. 삼성물산우는 1만2000원(8.39%) 떨어진 13만100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도 각각 4.96%, 2.42% 하락했다. 삼성SDS(3.19%)와 삼성전기(-1.99%)도 하락마감했다.
이 부회장 법정 구속 소식 후 오름세를 보였던 호텔신라는 장막판 밀리며 1.41% 하락한 8만3700원으로 마감했다. 반면 호텔신라우(5.15%) 급등했다.
김태현 기자
온 종일 이목을 끈 현안에 여당은 즉각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제1야당이 침묵했다. 입장을 밝힐 이유도, 밝혀서 얻을 것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민주당 "사면, 당 지도부 입장과 일치…정경유착 끊겠다" vs 국민의힘 '노 코멘트'
18일 오전에는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진행됐고 첫 질문부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급했던 사면이 주제로 나왔다. 문 대통령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며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강조했다.
이날 오후에는 법원의 판결에 눈길이 쏠렸다. 이 부회장은 재계의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민주당은 민감한 사안인 만큼 당의 입장을 바로바로 내놨다. 사면에 대해서는 최인호 수석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연초에 당 지도부는 당사자의 진정한 반성과 국민 공감대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모은 바 있다"며 "대통령의 말씀은 당 지도부의 입장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이 부회장의 판결에도 논평을 내고 "정경유착이라는 부정부패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6시 현재 대변인 명의의 논평 등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친박계(친박근혜계) 서병수 의원 등을 제외하면 당 중진들의 입장 표명도 찾기 어려웠다. 문 대통령의 입양 관련 언급, 경제정책, 대북외교 정책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 평가를 쏟아냈지만 사면과 이 부회장 판결 등에는 입을 닫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앞으로도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은 따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면? "대통령 판단할 문제" 이재용 부회장 구속? "입장 표명 안 하는 것도 정치적 메시지"
제1야당의 이 같은 태도는 입장을 밝히는 게 적절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선 사면의 경우 애초 여당 대표가 연초 제기한 이슈로서 야당이 나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에도 기자들과 만나 사면 문제에 "그거야 대통령 스스로가 판단해서 얘기할 사안이라 내가 이러고 저러고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뚜렷한 입장을 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바탕에 깔렸다. 적극적으로 사면을 요구하기에는 중도층을 포함해 사면에 부정적인 여론이 상당하다는 게 부담이다. 물론 전직 대통령들을 배출한 정당으로서 사면을 하지 말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부회장의 판결에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재계의 걱정과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하면 보수야당으로서 판결을 환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판결을 비판하면 '재벌 감싸기'라는 여권의 프레임(구도)에 또 한번 갇힌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면 문제 등은 자꾸 언급해봐야 내부갈등이나 생겨서 이미 김종인 위원장이 우리가 논평할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며 "이 부회장 판결 등 현안에 아무런 입장 표명을 안 하는 것도 그 자체로 정치적 메시지"라고 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사면은 대통령의 문제라서 리스크도 대통령이 져야하고 야당은 말 안 하는 게 맞는다"며 "이 부회장 판결에 대한 반응도 재벌개혁 필요성을 역설한 김종인 위원장 체제에서는 자연스러운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박종진 기자, 박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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