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광고 규제 전면 완화.. '지상파 구출작전' 통할까

권영은 2021. 1. 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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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이 전국을 여행하면서 라면을 끓여 먹는 tvN 예능 '라끼남'은 지난해 6월 간접광고(PPL) 상품인 특정 라면 이름을 언급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인 '경고'를 받았다. 방송광고 규제 완화가 뼈대인 정부의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방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이보다 더한 프로그램제목 광고부터 프로그램 흐름을 끊고 내보내는 중간광고를 최대 6회까지 봐야 한다. tvN 방송 캡처

정부의 '지상파 구출작전'이 통할까. 지난 13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사실상 지상파 살리기 대책이라 할 만한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방안'을 내놨다. 1973년 이후 금지했던 중간광고를 허용하고, 프로그램 제목에 광고주 명칭을 쓸 수 있게 하는 등 방송광고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것이 골자다. "시청자보다 방송사업자를 우선한 규제 완화"라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낡은 규제 혁신" vs "방송사업자 우선한 대책"

방통위가 내놓은 방송광고 규제 완화 방안에는 48년 만에 지상파에도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간 지상파는 하나의 프로그램을 2, 3부로 쪼개 그 사이에 내보내는 분리편성광고(PCM)를 편법으로 해왔다. 방송 캡처

규제기관인 방통위가 규제 완화에 나선 만큼 이번 대책의 명분은 명확하다. 지상파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치이고, 광고 매출에서는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에도 밀리고 있는 처지다. 방송 환경이 급변했으니 과거 지상파가 과점적 지위를 누리던 시절 만들어진 낡은 규제는 현실에 맞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게 방통위 입장이다. 유료방송에만 허용하고 유독 지상파에만 금지됐던 중간광고 같은 비대칭 규제 해소가 대표적이다. 지상파에 불리한 비지상파와의 차별적 규제 해소는 안팎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그 방향이 잘못됐다는 게 언론시민단체 지적이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14일 열린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주최 긴급간담회에서 "비지상파의 공공성을 해치는 광고를 규제함으로써 비대칭을 해소하지 않고 오히려 지상파 규제를 해소하는 방식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예능 제목이 '비비고 삼시세끼'? "자본의 방송 장악 불 보듯"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제5기 방통위 비전 및 주요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방통위 제공

방송법 상 금지된 광고 유형만 빼고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방안은 방송광고 전반의 정책 기조 변화가 점쳐지는 대목이다. 정 교수는 "이렇게 방송사업자에게 길을 다 열어주면 공공성과 시청권을 훼손하는 광고가 등장할 수 있다"며 "작은 틈만 있으면 다양한 편법이 나올 가능성이 상존하는데 네거티브 전환은 사실상 공적 규제를 해체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광고 형태까지 사회적 동의 절차 없이 사업자 재량에만 맡겼다간 상업적 이윤을 위해 시청자 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광고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예 광고의 한 종류로서 프로그램 제목 광고를 도입할 수도 있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제목에 '삼성래미안과 함께 하는 펜트하우스'나 '비비고 그리고 삼시세끼'처럼 광고주나 상품의 명칭을 넣을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이 경우 지금처럼 프로그램에 광고가 붙는 게 아니라 광고에 프로그램이 붙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민언련 주장이다. 광고주 요구나 입맛에 맞춘 프로그램이 편성·제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시청자 의견을 반영하는 최소한의 과정 없이 방송사 운영이 어려우니 중간광고 등을 허용한다는 논리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광고를 따내기 위한 시청률 경쟁이 더 커지고, 공익보단 자극적이고 폭력적, 선정적인 프로그램 나올 가능성이 커 시청자가 얻을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상파 위기 타개할까 족쇄 될까

지상파는 광고 매출의 급격한 감소로 2019년 2,140억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봤다. 출처 '2019년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방송광고 규제 완화가 지상파 위기의 타개책이라기보단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공적 재원 비중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광고 의존도를 높이는 방식은 지상파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면에서도 광고가 붙지 않은 OTT와 차이를 더 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할 게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선 광고 시장 규모가 제한돼 있고 주도권은 이미 온라인으로 옮겨간 상황에서 이번 규제 완화가 지상파의 안정적 재원 확보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김서중 민언련 대표(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으로 방송시장이 상업적으로 갈 위험성을 안고 있다면 공공성을 강조해온 지상파에게 유리한가 엄밀한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후일 지상파의 공적 재원 확보 논의 시 명분을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지상파의 공적 책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방송사업자의 오래된 규제 완화 요구를 모두 수렴했다는 사실보다 지상파가 수행해야 할 공적 책임을 먼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걸맞은 지상파의 공공성을 구체화한 후 시장 활성화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다"고 꼬집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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