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모성애 버린 엄마들

김태훈 논설위원 2021. 1. 19.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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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미국 애리조나의 한 아파트 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집에는 젊은 엄마와 어린 남매가 있었다.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을 향해 엄마가 외쳤다. “아기를 받아 주세요!” 베란다 밖으로 던진 아기를 한 남자가 받아안은 걸 본 엄마는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직 딸이 남아 있었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이었다. 딸은 이웃에게 구출됐다.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겨울에 길을 걷다가 아이를 낳게 되자 옷을 벗어 덮어주고 얼어 죽은 엄마도 있다. 인도 철학자 라즈니시는 어머니를 ‘자식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는 여자’라고 했다.

▶과학은 이런 모성이 호르몬의 마법 덕분이라 설명한다. 아이를 낳으면 뇌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그게 모성애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젖을 물릴 때 다량 분비돼 자식과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남편 코 고는 소리엔 아랑곳 않고 잘 자다가 아기의 작은 울음소리에 눈을 번쩍 뜨는 것도 이 호르몬의 조화다.

▶아버지에겐 돈 떨어졌을 때 전화하고 어머니에겐 위로받고 싶을 때 전화한다는 말이 있다. 시인·동화작가 정채봉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어 어리광 한 번 부리지 못했다. 그 상실감을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중략)/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중략)/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게 참척(慘慽)이다. 최악의 불효로 친다. 부모가 자식 목숨 빼앗는 것은 해당하는 단어조차 없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비극이 최근 잇달아 벌어졌다. 모두 어머니 소행이다. 한 여성은 자신이 낳은 아기를 이 혹한에 탯줄도 끊지 않고 집 밖으로 내던졌다. 또 다른 여성은 여덟 살 딸의 호흡을 막았다. 제 손에 숨막혀 죽어가는 아이 눈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된다.

▶천륜을 저버린 엄마들에게도 저마다 사연은 있을 것이다. 두 사례 모두 가족이 해체됐거나 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IMF 위기 때도 많은 가정이 깨지고 아이들이 희생됐다. 한 정신의학과 교수에게 물었더니 “생활이 어려워 조울증에 빠지면 공감 능력을 잃고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절망적 상황 때문에 모성애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보통의 어머니들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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