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 신탁 1000조원, 10년새 2배이상 늘어
경기도 용인에 사는 40대 박모씨는 지난 2019년 은행을 찾았다. 이혼한 후 병까지 생긴 박씨는 홀로 여섯 살 난 딸을 길러야 하는데, 남겨질 재산이 많진 않아도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시지가 2억원이 조금 넘는 집을 딸이 30세가 될 때까지 온전히 지킬 수 있게 은행에 신탁(信託)하기로 했다.
10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낸 70대 정모씨는 남겨질 재산 중 일부는 기부하고, 나머지는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법률상 유일한 가족이 수년 동안 왕래가 없었던 여동생이라는 점이다. 정씨는 “한번은 조카가 사업 자금을 보태달라고 해 어렵다고 하니 어차피 돌아가시면 자기 엄마에게 상속될 재산이니 당겨서 달라고 하더라”라며 “조금이라도 정신이 멀쩡할 때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지 명확하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신탁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기준 신탁 수탁고는 1021조원으로 집계됐다. 신탁법 개정으로 금융권에서 유언대용신탁 등 각종 금융상품이 나오기 시작한 2011년(410조원) 이후 10년 만에 2.5배가량 늘었다. 매년 10%씩 증가한 셈이다.
◇5%만 유언 남겨···상속 소송 10년 새 4배
신탁법이 개정된 것은 2011년이지만, 사회적 관심이 커진 시기는 2013 년 이후부터다. 그해 7월부터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되면서 치매와 상속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제도는 정신적 제약이 있어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성인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본인이나 친족, 검사 등의 청구에 따라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한다. 지난 2015년 롯데가(家)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하면서 경영권 분쟁의 최대 쟁점이 되기도 했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신탁법 개정 초기엔 자산가들 위주로 신탁에 가입했는데 일반인 가입자도 많아지고 있다”며 “상속 분쟁을 한 차례 겪어 본 가족들이나 남겨질 재산을 처리하기 어려운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상속 재산 법적 분쟁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1년 527건에 불과했던 상속재산 분할 소송이 2019년엔 1887건으로 급증했다. 2020년엔 2000건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불과 10년 만에 4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분쟁이 생기는 원인 중 하나는 한국에선 아직 유서(遺書) 쓰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적인 영역에 속해 정확한 집계 통계는 어렵지만 금융권에선 한국인 중 유서를 쓰고 사망하는 사람들은 3~5%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가입했던 유언대용신탁… 초고령사회 임박에 중요성↑
미국이나 일본에선 이미 필수 금융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선 통상 상속 재산이 10만달러가 넘어가면 대부분 신탁을 설정하게 된다. 유명인들도 신탁을 통해 상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77년 8월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엘비스 프레슬리는 사망하기 6개월 전 남은 재산을 신탁으로 관리했다. 당시 열한 살이던 그의 딸과 할머니, 그의 아버지를 수익자로 정했다. 마이클 잭슨은 생전 세 번이나 유언장을 작성했고, 월트디즈니나 스티브 잡스도 모두 신탁을 이용했다.
국내에서도 신탁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0년 노인(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어서며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2026년엔 그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75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치매 환자는 2024년에는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은행권에서도 신탁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가입 조건도 낮추고 있는 추세다. 금융 당국 역시 신탁제도 개편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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