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또 다른 ‘정인이 비극’ 막으려면
해외 한국인은 뜻 있어도 못 해… 제도 맹점 꼼꼼히 살펴 개선해야
‘정인이 사건’ 양부모 재판에 몰려든 시민들을 보고 누군가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대단해. 자기 일도 아닌데 저렇게 불같이 화내고 슬퍼하다니….” 하지만 2016년 대구와 포천에서 벌어진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을 떠올려보면 씁쓸하다. 당시에도 각각 3세와 6세 여아가 입양 가정에서 학대에 시달리다 숨지면서 지금처럼 사회적 공분이 일어난 바 있다. 포천 6세 입양 여아는 툭하면 굶거나 묶여서 맞는 끔찍한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양부는 전과 10범이었고, 양부모는 시신까지 불태웠다. 불과 5년 전 일이다.
양부모라 그랬다는 건 물론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아동 학대 사건 10건 중 7건은 친부모로부터 일어난다. 양부모는 전체의 0.3%(2019년 기준)만 해당한다. 그런데 친부모 학대가 많은 건 친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지 어느 편이 더 심각하냐는 식의 공방은 통계적으로 부질없다. 다만 학대 당사자가 친부모라면 아이 처지에선 어쩔 수 없이 놓인 환경이지만, 입양은 다르다.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해준다면 비극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입양 과정은 간단치 않다. 사회복지 기관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입양 신청 부모보다 매년 300~500명 정도 많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복지사는 수가 적어서 업무에 허덕인다. 정인이는 2019년 입양된 704명 중 하나였다. 해외 입양아가 317명, 한국인 양부모를 만난 아이는 정인이를 포함해 387명이었다.
정인이는 입양될 때만 하더라도 운 좋은 아이였던 셈이다. 아이들은 많고 입양 희망 가정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입양 허가는 거의 100% 이뤄진다. 2017~2019년 입양 허가 신청은 2244건, 승인은 2248건이었다. 전년도에서 넘어온 사례까지 포함한 수치다. 현실이 이러니 이 부모가 입양아를 잘 키울 수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이 빈틈없이 이뤄지고 있는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입양 기관들은 20여종 가까운 서류를 보고 2차례 가정 방문까지 하면서 철저히 따진다고 항변하지만 이번 ‘정인이 사건’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사정은 이런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이 입양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기관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회의적이다. 한 지인은 남편 직장 사정으로 외국에 장기 거주하고 있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입양을 결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른 서류는 다 냈는데 복지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쓰는 ‘가정조사서’에서 막혔다. 복지사가 며칠씩 해외 출장 갈 수도 없고 비용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다. 한 사회복지 기관 관계자는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출장비 때문이라면 현지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대신 해주면 된다.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 답답해했다. 아니면 해외 지사가 있는 입양 기관에서 해주면 되는데 한국인은 안 해준다. 외국인이어야 한다.
이 지인은 “입양 기관이 받는 수수료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 한 입양 기관이 외국인에게 받는 입양 수수료는 4만~5만달러(미국인 기준)이지만 한국인은 그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아마 오해일 것이다. 그러나 오해가 쌓이면 편견이 된다.
보건복지부는 해마다 입양의 날 기념식을 갖는다. 여배우를 비롯한 유명 인사를 홍보대사로 초청해 행사도 치르고 입양 모범 사례를 발굴해 상을 주면서 입양을 독려한다. 그 정성으로 이런저런 입양 제도 맹점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개선해주길 기대한다. ‘제2, 제3의 정인이’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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