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이전·죽음 이후.. 매혹적 미개척지 그린 '명품 로드무비'

박돈규 기자 2021. 1.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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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소울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 불의의 사고로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된 조 가드너(오른쪽)가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영혼 '22'와 함께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IMDb

계약직 음악 교사 조 가드너는 정규직 전환 통보를 받지만 별로 기쁘지 않다. 플랜 B가 아닌 플랜 A, 오래된 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유명한 재즈 클럽에서 피아노 면접을 치르고 마침내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는다. 그야말로 러키데이(행운의 날)다.

하지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아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 날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된다. 그 순간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풍경이 관객 앞에 펼쳐진다. ‘태어나기 전 세상’. 이곳에 떨어진 조는 냉소적이고 출생을 회피하는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조가 잃어버린 몸을 되찾아 꿈의 무대에 서려면 ’22′가 가진 지구 통행증이 필요하다.

내일(20일) 개봉하는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Soul)’은 지구로 돌아가야만 하는 영혼(‘조’)과 지구를 거부하는 영혼(‘22’)의 모험을 따라가는 일종의 로드무비다. ‘인사이드 아웃’(2015)에서 슬픔과 기쁨 등 감정 캐릭터를 의인화하는 솜씨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피트 닥터 감독이 이번엔 ‘죽음 이후’와 ‘탄생 이전’이라는 매혹적인 미개척지로 우리를 데려간다. 조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죽은 영혼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출렁이는 계단을 따라 머나먼 저세상으로 가는 장면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태어나기 전 꼬마 영혼들은 투명한 프리즘 같다. 아름다운 단순화다. 그들이 흥분의 집과 냉정의 집 등을 거쳐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은 그 상상력이 놀랍다. “지구는 지루해서 가고 싶지 않다”던 ’22′가 지구의 맛을 음미하는 대목은 유머러스하다.

'소울' 스틸

이 애니메이션은 재즈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음악은 말로 담을 수 없는 것,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한다”(빅토르 위고)처럼 조는 즉흥적인 피아노 연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눈앞에서 문이 쾅 닫히는 좌절,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독, 그럼에도 ‘음악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는 열망을 모두 노래하는 셈이다.

무대에는 완벽하게 조율된 악기가 있지만 삶은 무질서하다. 난기류에 휘말리기도 하고 균형감을 잃은 악기처럼 엉뚱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무대에 올랐다면 중간에 삐끗하더라도 연주를 끝낼 책임이 있다. 조는 ’22′와 갈등과 불협화음, 작용과 반작용을 주고받으며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소울’에는 스카이다이빙을 닮은 장면이 많다. 태어날 때도 아득한 지구를 향해 영혼이 몸을 던져야 한다. 낙하산도 안전장치도 없다. 우리는 그렇게 이 행성에 도착한 영혼들이다. 행복에 이르기 위해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대신에 용기를 내고 작은 순간들을 즐기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추파춥스, 실타래, 먹다 남은 베이글 등 일상의 조각들을 앞에 두고 연주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남들처럼 목표를 정하고 달리기만 하는 삶은 공허할 수 있다. 바다를 향해 열심히 헤엄치던 젊은 물고기가 지나가던 늙은 물고기에게 물었다. “바다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늙은 물고기가 답했다. “지금 자네가 있는 곳이 바다라네.”

삶에서 진정한 우선순위에 집중하라는 얘기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공감의 표면적이 넓은 명품 애니메이션이다. 40대 남성 관객도 눈가를 훔쳤다. 슬픈 장면 탓은 아닐 것이다. 예상을 뛰어넘게 아름답거나 순결한 장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106분.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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