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굴기의 꽃산 꽃글]나무가 제자리를 지키는 까닭
[경향신문]
나무가 처음부터 제자리에 머문 건 아니었으니 짐승에 쫓겨 달아나기도 하고, 고사리의 간지러움을 피해 바위 근처로 물러났다가 절벽 위에 멈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멀리 뻗어 나가던 뿌리가 제 허리를 뒤에서 부여잡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아, 나 있는 곳이 둥근 바닥이로구나. 메아리가 귀로 돌아오는 것처럼, 언젠가는 제 본래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삐거덕삐거덕 노 젓듯 팔 흔들며 돛단배처럼 돌아다닌다. 외출도 하고, 섬에도 건너가고, 어쩌다 외국에도 가보았으나 손오공이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듯 저 나무들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결국 원점 회귀하듯 귀가해야 하는바, 이 또한 세상이 둥글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리라.
저 멀리 바다에서 깃발부터 차츰차츰 보이기 시작하는 통통배, 활처럼 휜 수평선이 지구가 둥글다는 유력한 증거로 배웠다. 이 편평한 땅이 손바닥이 아니라 주먹 같다는 사실을 그땐 선뜻 믿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우주를 조종하는 외계인의 음모가 아닐까. 대체 밤낮없이 아래로 흘러간 시냇물이 강과 바다를 거쳐 어떻게 하늘로 흐르는가. 저 허연 구름이 파도의 손자라는 것을 믿으란 말인가.
확인할 수 없는 건 매달리지 않는 게 현명하다. 시간은 늘 모자라고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다. 방향은 정해졌다. 저 수평선은 대괄호이다. 뭇 생명이 바다에서 온 것처럼 나도 저 둥근 장막을 열고 이곳으로 왔다. 머지않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의 둥근 기둥이 나머지 괄호를 이렇게 닫아주리라. (1959∼20??). 한 이랑의 물결을 가운데 띄우고 달랑 보따리로 싸서 제 뿌리 아래로 거두어주겠지.
나무는 발이 없기에 제자리에 있고, 풀은 입이 없기에 치열하게 산다. 한때 문지방이 닳도록 탐닉했던 술집의 소란을 뒤로하고 책상 앞에 무겁게 앉아 형광등을 끌어당기며, 마침 어제 배운 사람-땅-하늘-도-자연으로 둥글게 이어지는 노자 25장의 마지막 대목을 여기에 적는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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