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조 폐기, 자녀 승계 포기, 사과.. 이재용, 모두 소용없었다
18일 서울고등법원 312호 법정.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에 처한다’는 선고문을 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멍하니 검사석을 바라보기도 했다. 재판장이 구속 전 변명 기회를 줬지만, 이 부회장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재수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는 이 부회장의 진정성이 인정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새 삼성 만들겠다”... 모든 걸 다한 이재용
지난달 30일 파기환송심 최후 진술에서 이 부회장은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너무나도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다”며 울먹였다. 실제 이 부회장은 이전과는 달라진 삼성을 보여주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준법 경영을 양형에 참작하겠다고 하자, 이 부회장은 외부인으로 구성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작년 2월 설치했다. 내부 감사 조직이 아니라, 외부인에게 기업의 준법 활동 감시를 맡긴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이 부회장은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 평소 삼성에 비판적이던 법조인과 시민 단체 인사를 위원으로 선임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준법감시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자리에서 “자녀에게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 무노조 경영을 폐기하겠다.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내용만 보면, 대기업 총수가 아닌 시민 단체의 입장문 같았다”며 “준법 경영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부회장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한 것”이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올 초에도 준법감시위 위원들을 만나 상시적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미래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2018년 8월 기존 주력 사업 이외에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바이오, 전장을 4대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발표하면서,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일자리 4만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혁신 성장’을 앞세워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방문 중 이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 창출을 당부한 직후였다. 이 부회장은 최근엔 직접 반도체 생산 장비를 납품하는 협력업체 대표를 만나는 등 중소 업체와 상생하는 모습도 보였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으로선 판결을 유리하게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부재(不在)가 삼성에 가져올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사법 리스크... 상속 등 현안도 산적
이 부회장의 상황은 2017년 2월 1차 구속됐을 때보다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 10월 별세함에 따라, 그에 따른 상속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오는 4월 말이 상속세 신고 기한이다. 이건희 회장이 유언장을 남겼는지는 불확실하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삼성생명 지분의 상당 부분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상속 과정에서 혼란과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 한 재계 고위 인사는 “이 부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 가족 간 상속분을 어느 정도 교통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돼 있어, 그 과정이 순조로울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구속 상황에서 또 다른 재판도 받아야 한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등 혐의로 기소돼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관련 뇌물 사건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이 재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삼성이 이 부회장의 구속을 전제로 한 어떤 비상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이라며 “특히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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