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실업의 계절
[경향신문]
동서를 막론하고 은퇴 후의 삶은 운동선수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스포츠에는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게 이들을 더욱 막막하게 만든다. 가장 잘하는 일이 운동뿐인 사람이 갑자기 팀에서 방출되면 당장 무엇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하다 2019년 은퇴한 1980년생 파우 가솔은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NBA 선수들의 커리어는 정말 짧다. 30세에 은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는 준비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09년 NBA 선수들의 약 60%가 은퇴 후 5년 이내에 파산했고, 80%는 은퇴 후 2년 이내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프로야구도 실업과 구직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한 시즌을 마무리한 구단은 더 이상 동행할 의사가 없는 선수들에게 재계약 불가 방침을 통보한다.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주로 2군에서 세월을 보내던 선수들이나, 1군 주전이었어도 나이가 30대 중후반에 접어들어 기량이 하락하는 선수들이 방출 명단에 오른다.
이번 겨울에도 적지 않은 선수들이 그간 자신들의 생계를 보장해주던 프로야구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다. 자발적 은퇴라면 사정이 좀 낫다. 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이긴 하나 은퇴하자마자 프로팀의 코치로 취업하기도 하고, 스타 선수들의 경우 중계방송사 해설위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도 한다. 반면 방출은 아무래도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방출된 베테랑 선수 중 몇몇은 다른 팀에 재취업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하염없이 다른 팀들의 구인 전화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계약을 통해 구단에 고용돼 있어도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구단의 방출 처분에 대항하거나 그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저 은퇴 이후를 미리 준비할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각자도생인 게 현실이다. 일반 기업에선 은퇴 예정자들에게 은퇴 교육을 제공하기도 하나 프로스포츠 구단에는 그런 제도나 문화가 없다.
미국에선 은퇴 기로에 선 선수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경향이 싹트고 있다. 이들은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특화된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 가입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나서면서 사업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선수들에게 각성의 계기가 됐다. 선수들은 감염병 때문에 언제든지 리그가 중단되고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구단이나 리그 차원에서 전문가를 초빙해 재정관리 강의 등 은퇴 교육을 실시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2017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경제·사업 감각을 길러주기 위해 경영학 석사 과정 학생들과 프로스포츠 선수들을 연결하는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미국이 은퇴 선수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프로스포츠의 역사나 규모가 미국에 미치지 못하는 한국에서 이와 같은 바람이 불 날은 요원해 보이지만, 그래도 그 시기가 너무 늦지는 않기를 바라본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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