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 경제계 "대기업 준법경영 혁신 선례 송두리째 날아가"(종합)
경제계·외신 "삼성 넘어 한국경제 타격 불가피" 한목소리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삼성이 우려한 '총수 부재 재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결국 현실이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이 부회장과 삼성의 경영 시계는 멈춰서게 됐다.
3년여 만에 또다시 초유의 위기 상황에 직면한 삼성 관계자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하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했고, 경제계는 물론 국경을 넘어 외신까지 일제히 이번 재판부 결정이 삼성은 물론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 외신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 리더십 공백 불가피"
이 부회장은 18일 오후 2시 5분 서울 서초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정을 오갔던 이 부회장은 이날 판결로 다시 법정 구속됐다.
이 부회장의 재구속이 결정되자 경제계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특히, '1위 기업 총수 부재가 나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달라'며 선처를 호소했던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아쉬움을 넘어 탄식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 부회장은 코로나발 경제 위기 속 과감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진두지휘하며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데 일조했다"라며 "삼성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판결에 따른 경영활동 위축은 개별기업을 넘어 나라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무역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역시 그간 나라 경제 중추를 맡아 온 삼성 리더의 역할을 강조하며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외신들 역시 이번 판결이 삼성과 한국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집중 조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최고 메모리 반도체, 스마트폰, 소비자 가전 회사의 최상층에 공백이 생겼다"라며 이 부회장의 부재가 삼성의 대규모 투자 지연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점쳤다.
로이터통신 역시 글로벌 경쟁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의 상황을 소개하며 "이 부회장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게 됐다"며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 리더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 재계 "준법경영 혁신·외부 감시기구 공존 선례 물거품"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대기업의 준법경영 모델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재판을 앞두고 법조계는 물론 경제계에서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 실효성 여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이 부회장의 거취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실제로 앞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준법위의 실효성 여부를 판단,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선고 당일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준법위 실효성 여부를) 양형 조건에 참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앞으로 새로운 행동에 대한 선제적 감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재판과정에서 준법위 활동을 평가하기 위해 구성된 전문심리위원 가운데 재판부가 직권으로 선정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의 경우 △준법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법령에 따른 삼성 계열사 준법감시제도 실효성 △강화된 준법감시제도의 지속가능성 등 3가지 항목에 관한 18개의 세부 평가에서 과반인 10개 항목에 대해 '긍정 평가'를 내렸다.
강 위원은 지난달 7일 열린 파기환송심 8차 공판에서도 "현재로서 준법위 지속 가능성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최고경영자에 대한 폭넓은 감시 활동으로 조직의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3명의 심리위원 가운데 준법위 활동 및 실효성에 '부정 평가'를 내린 쪽은 특검 측이 지정한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가 유일하다.
◆ "이보다 더 어떻게…" 준법 가치 실현, 모호한 판단 기준 지적도
심리위원 평가 외에도 이 부회장이 밝힌 준법 경영 의지와 이에 따른 삼성 안팎의 실질적 변화를 고려했어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대국민 발표 당시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 소통 등 준법위가 권고한 각 의제와 관련해 준법의 가치를 실현하고, 회사 가치를 제고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이 같은 다짐 이후 삼성전자는 시민사회와 소통의 일환으로 355일 동안 농성을 이어 온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와 합의하고,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김 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어 같은 해 11월 51년간의 '무노조 경영' 원칙을 깨고 노사 간 단체협약을 위한 첫 교섭에 나섰고, 더 나아가 삼성 디스플레이는 지난 14일 노사 단체협약 체결식을 개최했다.
또한, 삼성전자를 비롯한 7개 계열사는 지난해 6월 준법위 권고안과 관련,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노사 관계자문그룹' 구성 등이 포함된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해 준법위에 제출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에 이어 이달 준법위 위원들과 면담에 나서며 대국민 발표 내용의 이행 및 지속적인 소통을 약속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준법위 설치 및 대국민 발표 이후 이 부회장이 주도한 삼성의 변화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광범위했다"라며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대응 가능성만을 준법위 실효성 판단기준으로 삼은 것은 1년 가까이 삼성이 실행에 옮긴 준법경영 사례가 경제계 전반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상쇄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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