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국칼럼]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쿠데타 세력 아닌 선출된 권력
대통령이 민주적 통제 외면하면
트럼프 재앙 피할 수 없을 것
사필귀정이다. 조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의 몽니를 물리치고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는 역사 속으로 퇴장했어도 그가 남긴 정치 교훈까지 묻어버려선 안 된다. 분열과 선동정치의 위험성 말이다. 최근 일어난 극렬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점령은 그 극단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도 헌법을 파괴하는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의 바퀴는 민주 규범에 의한 통제다.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는 그 규범으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꼽았다. 상호 관용은 상대 진영을 나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경쟁자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다. 제도적 자제는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권력 행사를 삼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들 두 바퀴 중 하나만 빠져도 민주적 통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흔히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으려면 법치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두 번째 바퀴인 민주 규범을 외면하면 독재나 전체주의로 추락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제도를 도입한 동구권 국가들이 줄줄이 독재의 길로 들어선 것도 민주 규범을 잃은 탓이 크다. 규범을 상실한 민주주의는 운전 규범을 무시하고 차를 모는 운전자와 같다. 설혹 법치의 형식을 띠더라도 법 앞에 평등을 구현하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법에 의한 지배’일 뿐이다.
요즘 우리의 민주주의가 법에 의한 지배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불길한 징조다. 여당은 미운털이 박힌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를 막는 법을 발의했다. 힘을 앞세운 입법 폭주는 제도적 자제가 아니라 상호 관용의 규범을 파괴하는 ‘제도적 남용’이다. 집권층은 윤 총장의 직무 복귀 판결이 나오자 사법부까지 공격했다. 민주적 통제를 외치는 자들이 민주 통제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흔드는 격이다. 더욱이 대통령 지시를 좇느라 출국금지요청서까지 조작한 행위는 통제의 우리를 뛰쳐나간 권력 일탈의 전형이다.
민주적 통제는 대통령이 국가 기관과 권력을 통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권력은 궁극적으로 권력의 주인인 주권자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 주권자가 국민이라는 게 우리 헌법의 대원칙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권력도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것이 민주 통제의 본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겸손한 권력이 되겠다”고 했다. 그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가. 대통령 권력이 민주 통제의 궤도에서 벗어나면 민주주의는 탈선한다. 두 번이나 탄핵 위기에 처한 트럼프가 반면교사다. 교만한 권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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