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세상보기] 어느 위촉 입학사정관의 수시 참여 후기

남상훈 입력 2021. 1. 1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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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내용 딱히 검증할 길 없고
선생님 따라 기술 내용 천차만별
학생들 실질적 역량 평가 힘들어
교육 본래의 의미 속히 되찾아야

대학은 지금 수시 합격자 발표를 끝내고 정시 입시가 한창이다. 특히 올해는 수시 전형의 공정성 문제가 새삼 사회적 이슈로 부상함에 따라, 고등학교에 대한 정보 없이 “블라인드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평가를 실시했다. 수시 전형 중 학생부 평가에 참여하면서 위촉 입학사정관으로서 느꼈던 바를 허심탄회하게 고백하고자 한다. 대입 전형의 본래 의미가 하루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2021학년도 입시에 도입된 블라인드 채점은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이미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예견된 결과인지라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일반고인지 특목고인지 자사고인지 정확한 정보를 블라인드로 가린다 해도, 학생 개개인의 내신 성적과 더불어 어떤 교과목이 개설되었는지, 학교장이 주관하는 각종 포상 프로그램이 얼마나 다채로운지만 보아도 학교차가 확연하게 감지되는 현실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지.
함인희 이대 교수·사회학
가장 난감한 것은 학생부 교과과정에 기술된 내용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지 딱히 검증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례로 사회문화 시간에 학생이 제출한 것으로 기록된 보고서의 주제나 내용을 보면, 과연 고등학생 수준에서 이토록 전문적인 주제의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쉽게 믿기지 않는다. 내게 익숙지 않은 수학이나 과학 관련 교과목의 경우는 생소한 용어에다 난해한 내용까지 곁들여 있어 이해조차 어려운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대학생보다 수준이 높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학업 성취도를 접하며, 말로만 듣던 “엄마 찬스” “아빠 찬스”의 실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거두기 어려운 순간도 많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험생 개개인의 실질적 역량과 잠재력 및 발전 가능성을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해당 과목 담당 선생님의 작문 실력을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꼼꼼히 읽어보면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은데 성실하고 세심하게 기록해 준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성의 없이 형식적으로 2~3줄 서술하는 데 그친 선생님을 비교하면서, 도대체 학생부 교과목 채점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대체로 특목고 자사고라 의심(?)되는 학교일수록 학생부 기록이 상대적으로 성실하게 이루어져 있음은 대학가에서는 상식에 속한다. (오죽하면 내신 성적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학부모 다수가 특목고와 자사고를 선호하겠는가.) 위촉 입학사정관으로 참여한 동료 교수도, 구체적 학교 이름을 거명하며 “H고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부의 달인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제 2022학년도 입시부터는 학생부 중 변별력이 낮거나 당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항목은 폐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기소개서 및 추천서 그리고 독서 목록이 폐지 대상이다. 2년 전, 교사의 실수로 이화여대 이름 대신 타대학 이름이 쓰여 있는 추천서를 발견했다. 물론 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을 쓰긴 했지만, 교사의 무성의함에 화가 치밀었던 기억이 난다. 자소설(自小說)이라 자조적으로 불리던 자소서와 형식적인 추천서가 폐지된다니 일명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내 활동 중 수상 경력은 학교장 및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일부 행사에 한정한다는 지침이 이제부터는 그마저도 학기당 1~2개 제한으로 바뀔 예정이라 한다. 이유가 ‘학교 간 격차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든 ‘공정성을 저해하는 부모 찬스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든 궁색하긴 매일반인 것 같다. 오로지 사교육 유발 요인을 없애겠다는 일념이, 도대체 왜 교육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 어떤 능력을 키워주고자 하는지 등 교육 본래의 존재 의미를 압도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고 슬프기만 하다.

학생부에서 독서 목록을 제외하는 이유도 대입에서 변별력 없음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라는 데는, 교육의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뒤바뀐 느낌이 든다. 입시에서 변별력을 가늠하기 위한 지표의 중요성 못지않게, 소기의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변별력과 무관하게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과정도 필요함은 분명하다. 허접한 자기계발서부터 전문가도 읽기 어려운 고전이 뒤범벅된 중구난방식 독서 목록을 보며, 학생들이 풍부하고 다양한 독서를 했으리라 100%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독서 목록이 필수항목일 때와 필수항목에서 제외될 때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기에, 독서 목록 제외는 필히 숙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수시 정시 반영 비율은 국가가 강제하고, 입시에 반영되는 학생부 항목 또한 국가가 결정하는 동안, 안정성이 필수인 입시는 이미 누더기가 되었고, 사교육 불패 신화는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것이 우리네 입시제도의 성적표다. “달리 무슨 수가 있겠느냐”는 체념과 비관이 팽배한 현실을 넘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통해 해결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함인희 이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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