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능력있는 공직자가 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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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원제: The Tyranny of Merit)'이 몇 달 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
능력있는 사람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더욱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민이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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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원제: The Tyranny of Merit)'이 몇 달 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 연초 한 방송사의 교양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철학자인 그의 글이 유독 한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다. 10여년 전 '정의론'이 열풍을 불러일으키더니 이번에는 '공정'으로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 중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대목은 '테크노크라시냐 데모크라시냐'라는 논의다.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노력하기만 하면 당신은 할 수 있다. 능력에 따라 대학에 들어가고,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사회가 능력에 따라 경제적 보상과 지위를 배분해야 한다.' 이와 같은 능력주의가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도 적용되어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정책을 다뤄야 한다는 기술관료적 접근법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정책결정권이 소수 엘리트에게 돌아가고 시민들은 정책과정과 정치과정에서 소외되며 공적담론은 점차 사라진다. 그 빈 공간으로 확증편향적 뉴스들이 채워지고 밀려난 사람들의 패배감, 굴욕감을 이용해 정치적 포퓰리즘이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인가. 새해 벽두부터 서양 민주주의 상징인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가 폭도들에게 점령당했다. 축제가 되어야 할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안전을 이유로 사실상 워싱턴이 봉쇄되었다. 대통령 취임식은 관중 없이 주방위군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치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의 설명을 가만히 들어보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입해 보아도 구구절절 맞아 떨어진다.
반면교사 삼아 우리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능력주의 신화를 벗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경제적 효율성을 고려하여 정책을 결정하면 그것이 최고의 정책일 것이라는 믿음도 지양되어야 한다. 학창시절 전교 1등 하고 어려운 고등고시를 통과해 고위 공직자가 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좋은 공직자인 것은 아니다. 때문에 중책을 맡고 있는 공직자들부터 먼저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실천적 지혜를 가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또한 행정부와 사법부에 있는 테크노크라시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여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능력있는 사람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더욱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민이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국민이 주인이고 공직자들은 대리인이다. 주인인 국민의 의견을 듣고 직접 결정하게 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일부 국민들만 과잉 대표될 우려도 있다. 그러나 문제점과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국민이 정책과정의 주인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민 개개인 역시 시민적 덕성과 공공선에 대한 공동의 담론을 회복하고자 애써야 한다.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무엇을 이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가 공공선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루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경계하지 않으면 미국 의회 유혈사태처럼 우리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테크노크라시의 점령을 막고 데모크라시의 부활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각자의 실천을 고민할 때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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