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감시위' 제안해 파장 일으킨 '도산법 전문가'
[경향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54·사법연수원 20기·사진)는 재판 내내 이 부회장 등 사건 관계자들만큼 주목을 받았다.
정 부장판사는 서울회생법원 초대 수석부장판사를 지냈으며 법원 내 도산법분야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도산법 전문가이다. 그는 기업범죄의 특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평소 “시스템이 바뀌어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고 했다. 그는 이날 “이 사건은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던 삼성 최고 경영진이 가담한 뇌물·횡령죄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대기업 범죄를 막을 장치가 없기에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라는 시각이다.
개별 재판을 넘어 사법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에 참여해왔다.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시절 국선전담변호사 제도 도입을 이끌었다. 파산부 재판장 시절에는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소기업에 신속히 자금을 지원하는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형사사건의 경우 ‘회복적 사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피고인 처벌에서 나아가 반성을 이끌어내 재범 가능성을 막고 피해자의 치유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음주 상태에서의 상해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인이 법원의 금주 프로그램을 착실히 수행하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의 2심을 선고하며 부당하게 탈락한 피해연습생 12명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법관이 사법의 역할을 넘는 영역까지 재판을 통해 추진할 경우 재판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지난 1월 이 부회장 재판과 관련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적 운영을 양형 조건으로 참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발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해 공판이 한동안 중단됐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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