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박성수의 내 인생의 책 ②]
[경향신문]
사람과의 작은 감정교류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다. 대신에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성찰의 시간을 갖기에는 좋은 기회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가끔씩 생각나는 책이 있다. 소설 <닥터 지바고>다.
저자는 20세기 초 러시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의사 지바고를 통해서 인간의 삶과 사랑,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그렸다.
고교 시절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닥터 지바고>를 마주했다. 러시아의 장엄한 설경, 지바고의 글 쓰는 모습, 혁명이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감동은 원작을 접하면서 오래오래 내 안에 자리 잡게 됐다.
검사 시절 우연인지 필연인지 파스테르나크가 다닌 모스크바대학교 법과대학에서 1년간 유학생활을 하였다.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진실과 자유, 삶에 대한 작가의 정신세계를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지바고가 우리 주위에 다시 찾아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맞닥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같은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바고는 우리들의 삶이 어떠한 철학적 바탕 위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 정의와 성찰, 무엇보다도 보편적 도덕을 바탕으로 하는 올바른 삶이 그것이다.
혁명과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지바고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지바고(Живаго)는 러시아어인 지츠(жить, 영어의 live에 해당)라는 동사의 파생형으로서 ‘생명이 살아있음’을 뜻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중의적으로 명명한 작가의 의중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지난 1~2년 동안 몇몇 사람들의 편협한 가치관과 오만한 선민의식,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우리 국민과 역사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혼란, 해악을 끼쳤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오늘이다.
‘진정으로 살아있는’ 인간, 사람 사는 세상을 다시 생각해 본다.
박성수 | 서울 송파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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